배에 부식을 실으며...
"안녕하세요. 다시 방문하심을 환영합니다. 이번에도 저희와 거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가격은 지난번과 비슷하며 이제 과일 철이라 수박, 메론, 파파야, 파인애플, 바나나, 사과, 포도 와 복숭아가 좋습니다. 마지막 두 종류는 아직은 약간 비쌉니다." 라는 전보문이 영문 텔렉스로 입전 되었다.
이곳을 기항할 때마다 단골로 거래하던 남아프리카 리차드베이의 현지 선식회사인 내셔날쉽챤들러 회사의 루비 아줌마가 보낸 전문이다. 전문을 받으며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 부식 구입을 더반에 있는 한남선식으로 이미 거래 오더를 보냈기 때문이다.
배를 타며 선장으로서 가장 처리하기 까다로운 일중의 하나가 이렇게 선식을 정해서 부식을 조달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먹는 것과 결부된 일이기에 모든 승조원의 마음을 하나같이 만족 시켜야 하는데 사람 맘이란 게 백인백색이라 한꺼번에 다 같이 충족시킨다는 것은 緣木求魚(연목구어)이다.
그러다 보면 뒷말 좋아하는 사람이 한 번씩 끼이게 되면 쓸데없는 말들이 붙게 되고 그로 인해 선내분위기가 뒤숭숭하니 쑥대밭이 되는 경우도 우리는 종종 경험하기도 한다. 오늘 전보를 보낸 내셔날 선식은 남아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된 선식회사의 하나이며 리차드베이 지역을 담당하여 우리 배에 전보를 보낸 루비 여사는 러시아계 이민 출신으로 나와 알게 되기는 이곳에 처음 기항했을 무렵에 만났으니까 어느새 10여년이 넘게 알아 온 사람이다.
그간 이곳을 기항하며 계속 그 회사와 거래를 하였기에 이번에도 자기네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을 터인데 다른 회사와 거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니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 돈 주고 내 가 사먹는 일인데 무엇 때문에 그들 장사꾼에게 미안하고 어렵게 생각한단 말인가? 사실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여겨야 하고 또 그리 행동 해야만 될 것이다.
그러나, 상거래에서 거래가 지속되다 보면 오랜 단골이 되고 그러다 보면 인간적인 유대 관계도 생기고 그런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할 때 거래의 끊고 맺음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결단이 요구 되는 힘든 요소가 파생되는 것이 아닐까?
이번 항차 다른 거래처로 바꾸게 된 것도 실은 그 동안 거의 독점으로 계속된 거래에서 불만족스러운 경우를 여러 번 당했다고 생각하는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바꾸게 된 것이다. 나의 그간 승선 경험에 의한 선식에 대한 인식은 모든 선식이 거의가 다 똑 같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상황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여럿을 경험시키기 위해 한 번쯤 선식을 바꿀 필요가 있던 중이었는데 불만사항도 생겼으니 함께 풀어주기 위해 바꿔 싣도록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이번 부식 납품을 하도록 지정한 선식은 이곳 리차드베이에 사무실이 있는 회사가 아니고 더반에 있는 회사로 어쩌면 사전 주문으로 미리 싣고 온 부식품 중에 불량품이거나 혹은 본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물품이 배달되어도 거리나 시간상으로 바꿀 수 없는 약점이 있지만 선식 운영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점이 이점으로 등장하여 지명된 경우이다.
외국 항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식을 만나는 일이 지금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더하여 해양대학에 선식학과가 개설 되었느냐는 등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외국 항에서 만나지는 한국계 선식업자들은 배를 타던 선원 출신이 많이 있다. 선원생활을 하다가 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그 곳이 만약 항구 도시거나 그 부근이라면 자신의 배를 타던 안면도 살릴 수 있고 현찰도 만지며 할 수 있는 사업이 선식 업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말이 통해 통역도 해줄 수 있는 편리함과 함께, 상륙할 때 차를 내어 교통편의를 줄 수 있는 부수적인 일이, 선식회사 간에 경쟁적인 서비스로 등장하면서 주객이 전도 된 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런 후유증으로 선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과잉의 통차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해주다가 잘못된 싸움의 여파가 본선으로 튀어 괜히 본선 선원들 간에 반목을 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여간 선원들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우에 익숙히 길들여져서 자신들의 시내 외출 때, 선식업자가 통차 역할을 해 주는걸 절대적으로 원하고 있으며 그런 서비스를 잘 해주는 선식업자를 선호하는 경향 역시 농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선식회사는 그런 일은 자신들이 할 서비스 항목에 들지 않는 통선업자의 일로 치부하여 상륙할 때 태워 주기를 요청하는 우리 선원들의 요청를 묵살하거나 아예 거절하기 때문에 말만하면 태워주는 습관에 물들어 있는 우리나라 선원들에게는 아무래도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더하여 선적하려는 부식품에 대하여 좋고 나쁨과 받고 안 받고를 시원스레 말로 해서 통할 수 있는 점이 부식을 취급하는 조리부서 사람들에게 한국계 선식을 편애하게 만드는 이유를 주게 되는 것이다. 금항차 본선에 납품하는 업자가 바뀌기는 했지만 다음 번 기항 할 때도 생각하고 또 보내준 텔렉스도 있으니 답전을 쳐 주었다.
'귀 전문 잘 받아 보았습니다. 죄송스럽게도 이번항차는 타 선식에 구매를 이미 의뢰하였사오니 양지하시고 이번 입항 시 만나지기를 바라오며 다음 번 입항 시에는 귀 상사와 거래되기를 바랍니다.'
전보를 받고 좀 실망했을 루비여사를 그려본다. 그러나 사업은 다 그런 것이니 이해할 줄로 믿으며 또한 그런 변화가 우리 배의 선식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니 어쩌면 다음번 기항 시는 품질 면이나 서비스 에서 모두 나아질 것을 고대해 본다. 만약, 이번 부두에 접안 시 그녀가 찾아오면 메모해 뒀던 조리장의 불만족 사항과 바라는 항목들을 이야기 해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