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Of Life

일하는 손들이 아름다웠다

by 전재성

어느 나라를 들어갈 때마다 배가 접안하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사람들은 통상 이민국 관리로 불리는 Immigration Officer들이었다.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는데 가끔 검역관(Quarantine Officer)들을 앞세우는 나라도 있었지만 가장 골치 아픈(?) 경우는 세관원(Custom Officer)들이 앞장서 들어오는 나라들이었다. 이런 나라의 경우, 주로 후진국인 경우가 많은데 가장 먼저 들어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뇌물과 현찰을 요구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도는 배를 타는 이들을 응대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부패한 나라 중에 하나인데 역시 세관원이 가장 먼저 승선해서 본선의 부식창고와 기관실, 본드 샵(Bonded Shop : 간이 면세점)을 뒤지고 자기들이 소용될만한 물건들을 강탈하고, 이후 들어오는 이민국 직원들이나 검역관들 역시 하이에나라고 표현하면 딱 맞을 만큼 많은 물품과 현금을 뜯어가곤 했다.

인도 Port Gangavaram에서 만났던 Stevedore들. 눈빛만큼 선한 이들이었다.

이와 같은 행태는 주로 후진국이라면 어디를 들어가건 왕왕 벌어지는 일인데 인도는 남아공을 제외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이런 횡포가 벌어졌다. 아프리카는 남아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도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들이 원하는 물건은 각 나라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곤 했다. 현찰(US Dollar)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지만.


하지만, 신기했던 것 하나가 그런 부패 공무원들이 지난 자리를 채우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선한 이들이었다는 것. 인도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우리의 업무를 도와야 할 대리점원(Agent)부터 공무원들과 한 패가 되어 본선 곳간을 제 곳간마냥 털어가기 바빴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채운 항만노동자(Stevedore)들은 정말 자신들이 일한만큼 벌어가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성실한 이들이었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Stevedore들

이른바, 화이트칼라로 분류될 이들은 어떻게 하면 저 놈들(뱃사람들)을 좀 더 쉽게 뜯어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보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블루칼라(항만노동자들)들은 그런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고 성실히 자기 할 일에 매진하는 상황... 솔직히 그런 상황이 내게는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인상은 까칠하고 험하기 그지없었던 시에라리온의 노동자들도 그러했고, 인도의 노동자들도 그러했다. 오히려 우리가 베푸는 호의를 애써 마다하던 그들... 부유하면서도 야비하고 비굴했던 이들보다 가난하지만 우직하고 당당했던 노동자들의 손은 그런 일을 우리가 당할 때마다 더 확연히 빛났다.



이 부르튼 손과 발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멍든 팔과 다리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깊은 산골짜기에 외진 섬마을에
환하게 밝혀진 불빛이 말하리니,
공장에서 광산에서 부두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노래하리니,
이 부르튼 손과 발의 이야기를,
이 멍든 팔과 다리의 노래를.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공중에 매달려 전선을 잇던 괴로움을,
영하 이십도의 벌판에서 새로
전주를 세우던 날의 기쁨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부러진 전주 불타 끊어진 전선을
넉걷이하던 아아 그날의 아픔을.
저 불빛 저 기계소리는 노래하는구나,
내 작업화 자욱 찍힌 곳에 새로 피돌고
내 손길 닿은 곳에 새 힘 솟구친다고.

나는 늙은 전공 내 이마엔 굵은 주름
손등에는 험한 상채기뿐이지만
나는 오늘도 간다, 떠오르는
아침햇살 온 몸에 받으며,
불빛이 말해주는 내 얘기 들으며,
기계소리가 들려주는 내 노래 들으며,
이 땅 방방곡곡에 발자국 더 깊이 찍으리.
불빛과 기계소리 더 높이 울리리,
언 어깨 못박힌 손으로
이 나라 하늘 떠받치리.


(신경림 '늙은 전공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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