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게양과 관련된 해프닝

선상에서 생긴 일들(1)

by 전희태


대리점 연락에 의하면 96시간의 대기가 예상된다는데 그 기다림이 시작되는 리처드 베이 외항에 투묘 정박 한 첫날 아침이 되었다.


승선 기간 내내 빠지지 않으려 각오한 아침 운동이라 열심히 갑판을 돌고 있는데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선교의 당직자들이 부산히 움직이며 정박등을 끄고 깃발을 올리기 시작한다. 배는 항구에 입항하면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낮 시간에 선미에는 자신의 국적 깃발을 게양하고 메인 마스트의 야드 암(YARD ARM)에는 기항국의 국기를 올려 인사로 삼는 관례가 있다.


날이 샜으니 정박등을 꺼주고, 현재 우리 배의 선적(船籍)이 파나마로 되어 있으니 선미 깃대에는 당연히 파나마 기를 올리고, 메인 마스트 야드 암 기류 줄에는 남아공화국에 기항 중이니 남아공 국기를 올려 주면서 아침 과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선미에 올려져 있는 파나마 기를 당연한 것으로 보며 지나치려는데 아무래도 눈썰미에 이상한 감이 느껴지어 걸음을 멈추고 올려진 기의 상태를 찬찬히 살폈다.


아아 이래서 그랬구나!


선내를 지나다닐 때 무심코 지나치는 듯해도 늘 순찰이나 점검하는 마음을 품으며 다니는 습성 때문이었을까? 거꾸로 게양된 기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즉시 브리지로 전화를 걸어 확인을 시키며 바로 잡아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사실 외국 국기들 중에는 위아래를 잘 구별할 수 없는 모양의 기들이 제법 많이 있다. 따라서 무심히 취급하다가는 오늘 아침과 같은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625427_528876327165230_112021841_n.jpg 선미에 게양된 태극기. 선미에 게양된 국기는 선박의 기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앞세워서 국기와 깃발을 묶어주는 기류 줄을 찬찬히 살피기만 해도 아래위의 구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데, 오늘 아침 실수는 그리 할 만한 매너를 가진 위치의 당직자가 아닌 사람이 당직 섬으로서 발생한 것이다. 사실 보통 선원은 크게 갑판부와 기관부로 나뉘어 갑판장, 갑판수, 갑판원, 조리장, 조리수(원) 그리고 조기장, 기관수, 기관원으로 나뉘는데 현재 회사는 선원을 예전과 같이 부별로 나누지 않고 선박 자동화에 맞춘 전천후 직능 선원으로 훈련해 보고자 GPC(*1) 교육을 실시하면서 기관부쪽의 선원을 갑판부의 일을 습득하도록 하고 있는 중이라 갑판수 당직 사항이었던 각종 기의 게양을 기관수가 대신하여 시행했는데 처음으로 해보는 미숙함 때문에 이런 실수가 나타난 것이다.


이번 실수는 스스로 확인하여 자체 내에서 시정됐으니 작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지난해 신조 인수 처녀항해 시 이곳 리처드 베이에 기항하였을 때는 나를 포함한 전 선원이 남아공 국기를 올려주면서 실제로는 이미 남아공 국기에서 물러난 기를 올리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저질렀던 적이 있다.


당시 인종차별 정책을 쓰던 백인정권이 물러간 후 새롭게 시작하면서 이들은 네덜란드와 영국기가 도안에 들어가 있던 옛 국기를 폐기하고 새로운 국기를 제정하여 사용 중이었는데 그것을 간과하고 바뀌기 전의 폐기된 국기를 휘날리며 태연히 입항하려던 실수를 한 것이다. 잘못된 국기의 게양은 도선사가 승선한 후에 이야기를 해 줘서 알게 되었다.


부끄럽고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즉시 잘못된 기를 내리고, 새로운 그들의 국기를 긴급으로 공급해 주도록 대리점에 요청하여, 입항수속 중에 수급받아 일단락 지었다. 속으로는 그런 실수를 하게 된 것에 대해 한참을 꿍꿍거리며 담당 항해사인 2 항사에게 미리 준비를 못했다며 타박도 주었었다.


선박을 어느 항로에 투입할 때 준비하고 알아야 할 사항을 일일이 열거하여 사전에 체크하도록 하는 준비시키는 배선 전 CHECK LIST의 매뉴얼대로 사전 준비와 실행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당시 출항 전에 그에 맞추어 모든 일을 꼼꼼히 챙겼으면 남아공의 국기가 바뀐 것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생각도 했었지만 정치 정세가 어수선했던 그 나라의 형편을 생각건대 어지간히 챙기기 전에는 결코 찾아내기 어려운 문제였다고 결론을 내면서, 2 항사를 위시한 모든 부하 참모들에게 그 일로 품었던 껄끄러웠던 심정을 동종 실수의 재발방지를 당부하며 풀었었다.


새로 고쳐서 올려놓은 깃발 아래를 몇 번 더 돌아, 예정했던 운동량을 채우고 난 후, 방으로 올라와 샤워를 한 후, 하루의 시작을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주 *1: General Purpose Crew, 부별 직급 구별 없이 선내 전반의 일을 담당할 수 있게 훈련된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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