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압류당하다

배를 타면서 만나는 황당한 사건

by 전희태
DS00551.jpg 선내 계단 통로 - 선박의 크기에 따라 따로 승강기가 설치된 배도 있음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본선의 현문당직자를 앞세우고 남아공 경찰 관리가 나타나서 나를 찾는다. 본선이 압류되었다는 사실을 통보해 준다며 일방적인 압류 통보 서류를 건네준 후 몇 마디 말을 전하고는 그냥 물러간다.

법원 당국이 발부해주는 압류해제 통보서를 받기 전에는 출항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떠나는 경찰관의 뒷모습을 보며 대단히 황당한 기분이 든다.

우리 배로 말미암아 발생한 분쟁 때문에 발생한 압류상황이 아니라 우리 회사가 배를 빌렸던 - 용선 - 어떤 선박의 선주가 용선료 정산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했는데 상대회사에서 그런 일을 치르기에 만만한 곳이 이곳 남아공이어서 본선의 압류를 신청한 것이란다.


애매한 우리 배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의 느닷없는 일에 휘말려 들어 구설수의 중심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밤중이지만, 빠르게 연락을 해줘야 한 시간이라도 빨리 출항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회사의 담당 영업이사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자동응답기로 응대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끊고 이번에는 다시 담당 팀장에게 연락을 취해 본다.


서울은 새벽 2시 반인데 마침 부인이 받아서 곧 본인에게 연결하여 준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한 후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서류 다섯 장을 그대로 복사하여 본사로 송부(팩스로)하였다. 현지(배) 시간 새벽 2시 반 경에 회사로부터 전화가 있었지만 취침 중이라서 못 받고, 전화를 걸어 달라는 전언을 5시에 기상하며 받았다. 05시 20분 (우리나라 시간 12시 20분), 회사로 전화 걸어 본선 하역작업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어 11시 현지 시간이면 끝날 예상을 통보해주었다. 회사의 보험 법무 담당자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런던이 과업을 시작하는 시간에 P&I 측과 협조하여 빠른 시간 내로 본선의 상황을 타결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여 준다. 


0730시. 본사로부터 압류에 대한 해제는 본선의 선적작업 끝나는 시간보다 두세 시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0805시경 본선의 선적작업에 문제점이 생겨 작업을 중단한다는 통보를 FOREMAN(작업책임자)으로부터 받았다. 회사가 조치할 시한을 늘여주는 셈이니 반가운 일이다. 작업 중지한 LOADER는 앞의 선석(303 부두)에 있는 배의 작업을 돕는다며 본선 작업에서 빼내어 앞 선석의 타선으로 이동해 가 버린다.


이런 상황을 0820시 본사 영업부 연료탄 팀장 자리로 알려주니, 중단한 이유와 시간을 TIME SHEET에 정확히 기록하고 혹시 본선을 이안 시키려고 하는지 여부를 물어 왔다. 본선을 용선한 용선주와 이 문제로 인해 또 다른 분쟁이 발생할 소지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의 조치이며 문제제기를 한 측에서 압류를 장기화하려는 의도가 있는가를 빨리 파악하려는 회사의 물음으로 여겨진다.

아직 대리점이 도착할 시간이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간의 대리점에서 취한 연락이나 행동으로 봐서는 작업을 마치지 않고 이안 시킬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보고 했다.


0916시 대리 점원이 승선하여 본선의 선적증서와 국제톤수증서 갑판, 기관 LOG BOOK(항해일지)을 가지고 갔다.  두 번의 전화가 회사로부터 더 왔고, 그때까지의 진행 상황을 계속 알려 주었다. 빠르면 두 시간 늦어도 4시간 지나기 전에 본선의 압류가 풀리게 될 터인데 그 상황을 법원에 통지할 때 가장 빨리 알게 되는 사람이 관계 보안관이니, 차압 해지 사실을 인지 즉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그 보안관과 대리점이 계속 연락을 유지해 주도록 요청하란다.


위성 전화를 끊는 즉시 밖으로 나가 대리점에 일반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까지 본선의 압류 해지 요청은 도착되지 않았고 우리 배의 선적 작업도 앞에 하던 배를 끝낸 후인 오늘 밤중 22시쯤에나 재개될 것으로 이야기한다. 

날벼락을 맞은 기분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본선이나 회사가 동분서주한 결과로 본선의 압류는 그 밤 23시에 드디어 끝났다. 어제 저녁 나를 찾아와 본선의 압류를 알려주었던 바로 그 보안관 아저씨가 다시 와서 해제되었다고 알려줌으로써 만 24시간 만에 압류소동은 끝이 난 것이다.


선박용선을 많이 하며 해운 영업을 하는 회사에게 일부 그런 용선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의 유리한 해결을 위해 피용선주가 용선주의 자사 선박에 대해 압류신청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특히나 그런 분쟁이 잦은 곳이 내 경험으론 이곳 남아공의 항구 - 더반, 케이프타운 - 와 싱가포르항인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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