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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의 여행

모두 결혼 한 세 자매가 그들 만의 여행을 떠나다.

by 전희태
DSCF0218(5264)1[1].jpg 낙조가 깃들이기 시작한 남해.



집에 전화를 거니 이번 주말에 아내는 자신의 세 자매와 이종사촌 OO 씨 등 네 명이 장모님이 계신 수도(진해)를 위시하여 광양, 지리산 등을 돌아보는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나이가 되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매들이 함께 모여서, 가정사를 훌훌 털어 내 버리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귀가 솔깃한 멋진 이야기인가 하는 부러움에 잠시 전화 통화를 잊는다.


그런 예정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잠깐,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내 형편을 살펴본다.

장장 한 달 가까이 바다 위를 달리면서 집을 향해가는 대륙간 장거리 여행을 하는 몸이 아닌가?

그렇게 싫도록 여행을 하고 있으면서 뭐가 부족하다고 아내가 모처럼 자신의 자매들끼리 오붓하니 여행을 떠나 며칠 심신의 피로를 풀고 삶의 풍요를 위한 재충전하는 기회를 가지겠다는 갸륵한 뜻을 시샘하는 마음을 가진단 말인가?


혼자의 머릿속에 주마등 같이 달려 본 생각들을 미안해하며,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물어본다.

이종 사촌과 기차로 서울을 떠나 왜관에서 처형을 만난 후, 그녀가 직접 운전하는 지프차로 처제가 살고 있는 광양을 방문하여 합류한 다음, 네 이종 자매들의 여행을 계속할 거란 이야기이다.


처형이 직접 운전하는 짚 차로 여행할 거란 이야기에 좀 안심이 안 되는 기분도 들지만, 운전 경력이나 솜씨 모두 뛰어난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을 놓기로 한다.

그래도 절대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서 운전을 잘 해 달라는 나의 당부 말을 꼭 전하라고 부탁한다.


그런 여행 중에도 광양에 가게 되면, 민물 참게 장을 담가서 다음 주 중에 홍콩에서 서울을 방문하는 시누이인 나의 큰 여동생에게 선물 주겠다는 계획도 덧붙여 알려 준다.


일상의 가사와 관련된 일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달고 다니는, 그것도 멀리 시집가 있는 시누이에 대한 배려를 해주는, 어쩔 수 없는 주부인 아내를 생각하고, 나의 이기심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담는다. 너무 길게 통화했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기로 한다.


당신 사랑해요. 하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으며 진짜로 아내를 사랑하고픈 마음에 잠시 수화기를 놓고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사용시간을 베껴내 준 용지에 서명해주고 통신실을 떠나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걸어 본 전화였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평소보다 길게 통화를 하였다. 사용 통화시간을 보니 384초로서 초당 66원 40전 정도이니 약 25,500원의 통화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이 결코 아깝지 않은 오늘 하루의 시작은 유쾌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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