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심에서 비롯된 이런저런 감정들
외국의 화물 적하항에 도착하여 외항에서 며칠씩 기다릴 때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빨리 부두에 접안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곤 한다. 특히 계절적으로 바람이나 파도가 많은 때라던가 혹은 묘박지의 형편이 나쁜 곳이라 본선의 묘박 상태가 미심 적어지거나 하는 경우, 마음은 더욱 부두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오늘도 14시에 접안 예정이란 어제의 대리점 전보를 근거로 아침에 PORT CONTROL을 불러 접안 시간을 물어보라 당직사관에게 지시했더니 아직 예정이 나와 있지 않다는 대답이라고 일항사가 보고해 온다.
"그래, 이곳에서는 항상 그런 응답을 하다가도 금세 접안 예정이 잡혔으니 준비하라는 식으로 연락을 해오지"라는 말을 해주며 수고했다는 인사도 덧붙여줬다.
엊저녁 바람 불던 때를 생각한다면 일항사가 선수루(주*1)에서 큰 수고를 한 것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바람이 좀 더 세게, 더 오래 불었다면 앵커(닻)를 끌리게 하여 주위에 있던 다른 정박선과 접촉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 그런 상황을 미리 막기 위해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 선수루에서 S/B(준비)하고 있었던 건 자신의 책무이기는 해도 큰 수고를 한 것이다.
선장이란 직책이 이렇듯 방정맞다 싶을 정도로 미연에 방지할 선박안전을 의식한 걱정을 하다가 왜 또 쓸데없는 - 너무 앞서가는 - 걱정을 하는 거지? 하며 스스로를 꾸짖듯이 돌아보기도 하는 바 이런 게 모두 스트레스로 모여 결국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지 하는 또 다른 촉새 같은 염두를 굴려보기 한다.
오전 열 시쯤에 다시 22시 접안이 시작될 거라는 전문을 대리점으로부터 받아 놓은 지 세 시간쯤 지난 1330시에 포트 컨트롤에서 연락이 왔다. 금일 15시에 도선사 승선 예정이라는 새로운 기분 좋은 통보였다.
날씨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하여 걱정의 되풀이가 심각한 지경이었는데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14시에 도선사에게 직접 확인한 후 닻을 감기 시작했다.
안개가 살짝 낀 항내 이지만 무사히 들어서니 마음이 한결 놓이며 오늘 밤은 편한 잠을 자게 되었구나! 즐거운 마음이 든다. 모든 계류삭을 부두에 내어주어 걸어놓게 하고는 하나씩 순서대로 감아 들여 줄을 팽팽하게 유지시켜 배를 부두에 고정시켰다. 입항 작업이 끝난 것이다. 이어 올라 온 이미그레션(출입국관리), 세관 등 관공서의 수속까지 끝났는데도 대리점원이 나타나지 않아 괘씸한 마음 참으며 기다린다.
토요일 오후라서 당직자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라 짐작하며 다시 전화를 걸어 호출하니 금방 올 것이라 한다. 그 후로도 한 시간 이상 더 지체하여 나타나는 대리점원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확 풍겨온다.
제 깐에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이 수선을 피운다. 나야 내 필요한 일 챙기면 되는 것이니, 선용금(주*2) 전도의 일과 급하게 결원을 보충하려고 만 하루 이상의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 있을 우리 교대 선원이 언제 승선하는가를 따졌다. 돈은 내일 아침에 가져오겠다고 하고, 이미 며칠 전 비행기로 와서 바깥의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던 교대자는 곧 올 것이라 한다.
주*1 : Forecastle, 선박의 선수 쪽 닻이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출입항시 일항사가 브리지의 명령에 따라 현장 지휘하는 곳(부서).
주*2 : 선박이 입항한 현지에서 필요한 현금을 본사로부터 대리점을 통해서 전도받는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