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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개소 발견, 안전 수리 완료

기계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

by 전희태

70년대 초 인도네시아 원목 선적항 기항 시 마을 청년이 배로 갖고 와서 물물 교환을 원했던 악어 새끼.

(1234)1[1].jpg 알에서 갓 태어난 악어새끼.(자연보호 운동이 없었던 세월에 찍었던 사진)기계 고장은 초기에 잡아야 뒷탈이 없어지는 일이다.





주 기관의 L.O시스템에 이상이 발견되어 기관을 정지하고 수리를 해야겠다고 기관장이 방으로 찾아와 보고 한다.

회사로 연락을 해본 기관장이 현재의 이상 상황을 배를 세워서라도 찾아내어 원인을 잡아 해결하라는 감독의 지시로 배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번 항차 주기관이 정지하는 일 없이 잘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결국 오늘에 와서 그 기록이 무너지며 기관을 정지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인데 속으로 매우 아깝게 여겨진다.


갑판부는 선체 미관을 위한 도장 작업 중 굴뚝과 하우스에 칠을 하려던 중인데, 굴뚝은 고소이고 열이 많은 장소라, 기관이 정지되면 우선 굴뚝을 통해 토해내는 뜨거운 열의 공급이 차단되니 도장공사에는 득(得)이 되지만, 문제는 얼마나 정지 시간이 길어지나에 따라 포항 도착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는 실(失)도 염두에 둘 일이다.

-원인이 밝혀지리라고 믿어지며, 별 큰 이상은 아닐 것으로 느껴지는데.....

바쁘게 기관실로 향하면서도 침체해 있는 기분을 못내 떨쳐내지 못하는 기관장에게 위로와 힘을 내라는 의미의 덕담을 했다.


여덟 시 45분에 기관을 정지하였다. 뜨거운 엔진 챔버 안에 들어가 새는 곳을 살폈지만 찾지 못하고 정지시킨 기관을 열 시 15분에 다시 가동하여 속항을 시작한다.


한 시간 30분의 Lost Time이 나왔지만, 그냥 항해 중의 시간으로 넣어 계산하기로 한다. 통상 두 시간 이하의 기관 정지는 인정되는 LOST TIME이다. 그러나 아직 원인은 찾지 못했다.

펌프 한 대만 돌려 사용하던 것을 두 대를 함께 돌려서 한 대가 돌리던 때와 같은 양의 L.O를 보낼 수 있게 하고 있다는 말에 어딘가 이상이 남은 것은 맞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저녁 식사 중에 황소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펌프가 돌면서 힘들게 내는 소리가 들려오니 식사 중이던 기관장이 도저히 그냥 식사를 속행하지 못하고 원인을 꼭 찾아내겠다며 다시 기관실로 내려간다.

책임자라는 것은 이렇게 타인들과는 다른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지고 있는 부류의 사람으로 절로 되는 것이다.

저녁식사의 숟가락을 중도에 내려놓고 그렇게 기관장이 기관실로 내려가 엔진을 세우고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이미 방으로 돌아와 약간은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방의 전화벨이 울린다.

마치 아트라스라는 거인이 내는 신음소리처럼 울려 나오던 소리의 원흉을 찾아내어, L.O PUMP에 생겨있던 이상 현상을 말끔히 걷어내는 수리 작업을 모두 끝냈다고 기관장이 기쁜 목소리의 전화로 보고하여 온다.

작업이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나에게 걸은 전화였다. 다시 엔진이 작동된다.

나의 이야기대로 원인도 밝혀지고 고장도 찾아 수리를 완료했다는 보고에, 나도 절로 한숨을 돌리며 소음일 수도 있는 기관의 움직이는 소리를 기쁜 음악이라도 감상하는 양 주의 깊게 들어 본다.


원인을 찾아내고 보니 별 것 아닌 일로서 당직 중에 간단히 손을 본다고 일기사가 L.O PUMP를 분해 소제 후 다시 조립을 했는데, 이때 끼워 넣어야 할 O-RING을 빼어 먹고 조립을 하여 그런 소리가 새어 나오게 된 것이라는 사족이 덧붙여 있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돌대가리와 같은 융통성이 없는 물건이니 어딘가 사람들이 잘못 시중 들어준 이유로, 그런 소리를 불평에 잠긴 비명을 토하듯이 내 지른 것이다.

어떤 고장이든지 처음부터 찬찬하게 모든 과정을 살펴 되짚어 보면 원인이 나오게 되어있지만, 오전 중에는 바쁜 마음만이 앞서 쉽게 넘겨졌던 사항 때문에 놓쳤던 수리였던 것을, 오후 들어서는 어차피 시간이 걸리더라도 찬찬히 살펴가며 작업을 계속하여 올린 개가이다.

그리고 찾아낸 이유도 사람들이 잘못한 때문에 생긴 일과성 해프닝의 하나로서 귀찮다거나 잠깐 실수 등으로 정식의 절차를 벗어나 샛길로 빠져 가면 꼭 이런 식의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사실 일기사는 진급한 후 처음 일기사 직책으로 본선에 승선하였기에, 누구의 지시받아서가 아닌 스스로 솔선수범해서 일한다고 나섰던 사항이 미숙한 뒤처리로 그리된 것이니, 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잘 해결되리라고 믿고 있던 내 마음의 여유가 그대로 맞아떨어졌으니, 이 항차를 무사하고 안전하게 끝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층 더 크게 해준다. 기쁜 마음으로 수리 작업에 참여했던 모든 기관부원들과 기관장의 수고를 치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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