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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갑 빨래하기

사진은 배들의 무덤인 방글라데시 치타공 폐선장.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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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서 험한 일을 할 때 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의 일회용 비슷하게 소모품으로 쓰이는 면으로 만들어진 장갑이 있다.

육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공구를 사용하며 작업하는 곳에서는 수시로 쓰고 있는 면으로 만들어진 장갑이다

안전을 생각하면 그런 장갑을 끼고 선반이나 프레스, 드릴링 등의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장갑이 기계에 말려들게 되면, 그 때문에 손가락이 끌려들고 더하여 손 까지도 휩쓸리어, 손가락이 찢어지거나 손이 잘려나가는 등의 큰 사고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한 때는 그런 장갑을 못 쓰게 회사 차원에서 금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손의 더러움을 막아주고, 또 다른 안전 상황을 위해 면 장갑 사용을 다시 허용 하였고 선용품으로 신청하면 보급도 해주는 게 요즈음의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더러움이 빨리 타게 되는 여러 가지 손을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마다, 끼고 있던 장갑을 한두 번 쓴 것 이지만, 작업이 끝나서 그냥 벗으면 그대로 버리는 게 대부분의 경우가 되곤 한다.


이럴 때 일회용으로 취급하기에는 어딘지 과분하게 만들어진 장갑의 생애가 너무나 헤프게 마무리됨이 아무래도 아쉬워지는 것은, 나 같이 가난하고 어려웠던 세월을 살아 온 세대들에게는 길들여진 가난한(?) 마음가짐 때문일 거다.


그러기에, 수시로 배를 점검 할 때나, 배를 오르내리며 손에 묻을 더러움을 방지하기 위해서, 승선이나 상륙을 하려고 현문을 오르내릴 때 등, 핸드레일을 잡고 움직이면서 손에 묻을 더러움을 방지하려고 사용 할 때에도, 한번 쓰고 버리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재사용을 위해 배의 어느 구석에 숨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빼어 쓰는 일도 행하고 있다.


아내가 배를 방선 할 때에도 매번 장갑을 사용하여 배 안으로의 출입을 했기 때문에 이번 기항 시에도 장갑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어 사전 준비로 그간 사용하여서 너무 시꺼멓게 더러워진 몇 켤레의 숨겨두었던 장갑을 깨끗하게 손빨래를 하여 그런 사용에 대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알뜰하게 면장갑을 빨아서 사용하는 선원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라도 그런 살뜰한 정신을 계속 유지시켜 나감이 바람직하다는 마음으로 행해 보는 일이다.


시커먼 기름 땟물이 계속 흘러나오는 장갑 빨래를 하면서, 이렇게 자신을 애틋이 대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 빨래 감인 지금 목욕하고 있는 이 장갑들은 과연 머리가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빨래 감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어느 날 그냥 버려지든가, 아니면 다른 장갑을 찾다가 없어서 억지로 한번 쯤 더 쓰더라도,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쓰레기 통에 그대로 팽개쳐지는 비운을 가질지도 모르기에, 그런 삭막한 최후를 막아주고 예쁘게 치장 해주는 내가 그럴 수 없이 고맙고 반가운 사람으로 치부해 줄 거라고 믿어 본다.

그러나 나와 동료의 선원들 가운데는 어쩌면 선장쯤 되는 사람이 쪼잔 하게 쭈그리고 앉아 시꺼먼 쓰레기 같은 장갑 나부랭이나 비벼 빨고 있으니 어찌 체면이 서지 않잖아? 하는 이들도 꼭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나를 반갑고 고마운 사람으로 치부 해주려는 장갑들의 생각을 믿으며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울러 작은 물건이지만 아껴 쓰는 마음을 갖고 생활하자는 소박한 뜻도 더 보태고 싶은 심정이 내 솔직한 마음인 데, 바로 그 점이 요새 신세대들에게는 좀스럽고 늘 푼수 없는 사람으로 나를 보게 되는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세탁비누 칠을 하여 힘 있게 비벼대니 구정물이 시커멓게 빠져 나온다. 훨씬 깨끗해져 가는 장갑을 들어서 냄새를 맡아 본다.

세탁비누의 비릿하지만 그래도 독특한 향내가 은근히 배어 나오는 걸 확인하며 못쓰게 됐을지도 모를 물건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내 자신을 스스로 흐뭇하게 여기기로 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고방식으로 생활 할 심정이고, 이번에 아내가 방선하여 배에 오를 때, 그런 내 마음을 열어 보이며 동감을 얻어내고 확인할 작정도 가져본다.


배 안에서의 모든 일의 결정에 관여하게 되는 선장으로서, 나를 밀어주고 믿어주며 따르는 사람들이, 이런 작은 일에는 인색한 관심을 보이는 느낌이라, 우선은 나에게 가장 가가운 사람인 아내한테라도 내 심정을 확인 받아보고 싶은 마음을 면장갑 빨래에 덧붙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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