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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항 하루 전 풍경

검역이라면 젤 먼저 보는 곳이 식품을 관리하는 냉장, 냉동고이니

by 전희태
100724-위생점검 냉장실 008.jpg 깡통,병 등의 식품을 보관하는 창고




달리는 배의 속력을 뒤로 끌어당기듯이 방해를 하던, 그악스럽다고 까지 할 만큼 치를 떨게 해주던 바람과 파도가 그래도 생각보다는 일찍 멈추어 주었다.

이번 항해를 시작하며 세웠던 20 일 오후까지의 도착 예정은 그간 지체된 누적으로 인해 이제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예정에 맞추지 못할 만큼 늦어져 있다.


기왕지사 늦어진 것, 어두운 밤의 도착보다는 다음 날인 21 일의 밝은 아침 시간에 도착됨이 여러모로 유리하므로 속력을 조금 내리도록 조처를 해본다.

헌데 엔진 부하를 내린 만큼 속력이 떨어져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평소보다도 빠른 속력이 되어 잠깐 당황하게 만든다.

만약 그대로 빠른 속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저녁때의 도착도 가능할 것 같이 약을 올리지만, 결코 그대로 길게 이어질 수는 없는 형편 임도 알고 있다.

결국 한밤중인 어두운 때에 도착할 확률이 제일 높은 상황이므로, 그런 시간에 도착하여 닻을 내릴 때 받게 되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버거운 일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예정을 세워 놓고 그에 맞추도록 지시해 놓았다.


포항지점에 무선 검역을 신청하는 텔렉스를 시간을 좀 두고 아침에 보냈는데 수신을 했다는 이야기 대신 무선 검역을 E-MAIL로 다시 보내 달라는 전문이 날라 왔다.

텔렉스는 기계적으로 수신처를 포항 지점 번호임을 틀림없이 확인해 주었건만, 도착이 안 되었다고 하므로, 팩스로 다시 보내고는 송신이 끝나자마자 아예 전화를 걸어 수신 여부를 확인한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아마 통신실에 가서 수신지를 들고 나왔는지 잠시 후 틀림없이 받았다고 확인해 준다.

더하여 무선 검역 신청이 되었건만, 검역소에서는 접안 후 입항수속을 할 때에 실제 검역검사도 하겠다는 예정이란 연락도 받게 되니, 의아하면서도 좀 떨떠름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우리 배의 검역 상태를 미심쩍어하여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별로 걱정하며 체크 당 할 일은 없다는 확신이 서기에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하여 미진했던 선내 청소나 깨끗이 완료하고 우리대로의 환경정리를 청결하게 하는 찬스로 삼아 보기로 작정한다.


-내일 입항 수속할 때 검역관이 승선하여 냉동, 냉장고도 살펴보며, 선내 위생점검도 할 예정이니 각부서별로 할당된 청소구역을 철저히 닦고 쓸어내도록 청소를 하시오. 입항 전날의 과업을 이렇게 지시해 놓은 것이다.


입항 전에 안 할 수 없는 작업으로 나타난 이 청소의 결과가, 혹시라도 미진하여서 검역의 재수검이든가, 심한 경우 구서 작업(주*1)을 하라는 명령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가족과의 상봉 시간이 그만큼 지연되는 불이익을 당할 것이므로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일에 정성을 다해서 청소에 임하고 있다.


하기야 어제부터 선실 내의 미화를 위해 현문 들어서는 부근에 페인팅도 새로이 하고 선내 통로는 이미 깨끗하게 왁스 까지도 메겨 놓았기에 큰 걱정거리는 없다.

어쩌면 관에서 내리는 지시에 순응하는 것을 앞세운 형태이지만, 실제로는 그를 역이용하여 선내 미화를 깨끗이 하고 싶은 내 마음이 앞장선 작업인 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불평이라도 말하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진인사대천명>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냐는 변명도 은근히 덧붙여 준비하는 심정이다.


그렇게 바쁘게 보낸 시간의 끄트머리가 어느새 입항할 날의 동녘으로 밝아오고 있다.


엊저녁부터 이동전화도 터지고 텔레비전도 잘 보이는 해역에 들어서서, 이제 귀항 길의 피크에 와 있는 것을 실감하며 오랜만에 휴대폰을 통해 전해오는 아내의 명랑한 목소리에 기쁘게 귀를 기울여 준다.


선원이란 부류의 직업인들이 지루한 항해를 무사히 끝낸 후,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게 되는, 어쩌면 기쁨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생일날 같고, 뒤로 밀어서 모아 놓은 축제일 같은 국내항 입항 전 시간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서며, 바쁜 마음들을 춤추게 부추기고 있다.


주*1 구서 작업: 선내에 서식하는 쥐를 잡기 위해 약품 훈증 등의 작업으로 만 24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검역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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