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시 기사와의 대화
태어난 모습이야 이렇게 험상궂지만, 다 자라서 변신하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것을...
우리네 인생도 그런 아름다운 변화로 탈바꿈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로 돌아가기 위해 아침 여덟 시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왔으나 왜 인지 터미널에 도착할 시간이 늦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지나가는 빈 택시를 불러 세웠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바래다준다며 같이 따라나섰는데, 택시 좌석에 앉자마자, 우리 집 마당을 넘어 담장 밖으로 흩어져 있는 낙엽을 치워야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내와 함께 마치 토론같이 시작됐다.
낙엽을 태우면서 느끼는 가을의 정취랄까, 예전 고교생일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명수필인 이효석 님의 <낙엽을 태우면서 >라는 문장 속의 몇몇 글귀조차 기억에 새로운데, 우리는 낙엽이 쓰레기화되고 또 공기 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일 수도 있다는 일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가을마다 마당의 낙엽을 모아서 태우며 그 냄새도 즐기곤 했었는데, 이제 그런 낙엽을 맘 놓고 태울 수 없는 상황을 서러워하며 어찌 법이 그렇게 되어있는지 모르겠다는데 까지 말이 이르렀을 때, 그 기사님이 말 사이에 끼어들기를 한 것이다.
남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보이는 그 기사 아저씨는 택시 운전 경력만 40년이라는 그 야말로 베테랑 운전기사였다.
우리나라의 법이란 것이 약한 사람은 물고 늘어져 죽게 하고, 힘센 놈들은 모든 법 위에 군림하듯 법을 무시하고 저희들 맘대로 법을 휘젓는 꼴을 보이고 있다는 열변부터 토해내신다.
낙엽 사정은 이미 저 멀리 밀려 가버린 이야기로 되었고, 자신의 생각 속으로 우리가 반박할 꼬투리조차 남기지 않으며 잘도 엮어 나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옷 로비 사건을 두고 나쁜 연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흥분한 어조로 그들을 두루두루 조목조목 따져가며 잘못을 시원스레 매도하면서도, 운전 역시 물 흐르듯 잘하고 있다.
주위 환경을 깨끗이 하기 위해 자신의 집 대문 앞 낙엽을 쓸려고 해도 그렇게 나온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털어내어 쓰레기봉투를 사야 하니, 누가 솔선하여 동네 청소를 하려고 하겠는가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시 낙엽과도 연관이 있는 발언으로 돌아온 것이다.
더하여 서민생활에서 우리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괜히 법을 어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정치가들이 국회만 들어가면 썩어 버리는 모양새를 보인다며 학생 운동이나 민주화 항쟁으로 잘 나가던 젊은이도, 국회의원이 된 후 어딘가 달라져 버린 사람들을 욕설의 가운데로 세워 놓는다.
일단 국회에 진출하면 어느새 권모술수에 물들고 선배 국회의원들의 오리발 내미는 습성을 답습하여 실망을 준다며,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저렇고 지금 한창 잘 나가는 정치인을 손꼽아 가며 그들의 비리나 안면 바꿈 등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어느새 그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릴 때가 되었다.
-별로 탐탁한 이야기도 못 되는 말들을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지막 말로 인사를 대신하며 기사님은 요금을 받는다.
-아니요, 별말씀을요, 오늘 저희도 시원하게 잘 들었습니다.
인사치레로 대답하지만 진짜로 후련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는 소시민의 생활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을 그렇게 손님들과 토론 아닌 토론을 하며 쏟아내어 훌훌 털어내는 비법에 통달한 도사님 같기도 하다.
그러니 자신의 울분(?)을 조용히 경청해주며 때때로 동감까지 표해 주는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며 핸들을 잡는 것 일 게다.
그는 육상에서 나는 해상에서, 같은 운송 계통에서 일을 하며 먹고사는 동업자로 여기어, 오늘도 안전 운전하세요! 기원해주며 다른 손님을 태우고 멀어져 가는 그 택시의 떠남을 다시 한번 돌아서서 보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