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어디서든지 통화가 가능하기를 상상하는...
우리나라를 떠난 장기 항해에 나갈 때마다, 핸드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 년 이상이 지났다.
지금까지는 국내로 돌아왔을 때의 편의를 위해, 그냥 갖고 나가서 한두 달은 사용하지 않고도, 기본 사용료를 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번 항차부터는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신고를 하여 출항 후의 쓰지 않는 동안의 요금-기본요금-을 내지 않게 조치하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하고 떠났다. 그 신고하여 끊어야 하는 시점을 전화가 안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도록 한다고 약속을 하였기에, 전화기의 전파 크기를 보여주는 눈금을 확인하며 또다시 걸어 보는 전화이다.
걸고 나서 이야기를 하려니 이미 몇 번의 그런 통화를 하였기에 할 이야기는 모두 해 놓은 상태라서 더 이상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사랑한다는 말로 끝을 내고 끊으려 하다가도, 또다시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전화, 다시 할게! 하는 이야기를 하며 끊는다.
저녁식사를 하고 올라와서도 전력 충전기에 꽂혀있는 전화기를 보니 아직도 통화가 될 것 같은 안테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시 다이얼을 돌려본다.
이번에도 신호가 가는데, 처음 들어보는 찌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들린다. 이윽고 상대 쪽에서 수화기를 들어준 모양인데도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더니 끊어진다.
수화기를 들었지만 잡음만 나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상태를 확인하며 나에게서 온 전화인 줄은 알지만 이제는 전화가 연결되는 구역을 벗어났다는 것으로 알고 아내가 수화기를 놓은 때문 일 게다.
대한해협을 대마도에 더 가까이 붙은 위치로 남행하고 있으니 부산지역을 통해야 만 연결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거로 여겨진다. 이제 통화 포기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옆에 있으면 무난하다가도 이렇게 떨어지고 끊어지게 되는 경우에 닥치면, 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아무리 이별에 익숙한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이란 아쉬움의 미련 때문이리라.
사람들이 만든 육해공의 모든 탈 것 중에서 가장 이별을 안타깝고 짠하게 만드는 것은 배에서의 이별이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다.
이는 비행기는 하늘로 떠 오를 때 이미 그 순간을 마감시켰고, 자동차나 기차는 휑하니 떠나면 뒤돌아 볼 여가도 없이 빠르게 사라지니 아쉬울 마음을 챙길 겨를이 없다. 그러나 배는 부두에서 계류삭을 풀어내어 감아 들이는 동작에서 시작하여, 제대로 속력을 내어 외해로 향하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길다.
따라서 눈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의 별리가 떠나고 남는 자 모두의 애간장을 녹아나게 하는 긴 시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물러나는 배와 묵묵히 남아야 하는 부두 사이에다 어차피 끊어질 헤어짐의 아쉬움을 채색시켜 마음이나마 달래려는 듯, 오색의 가냘프지만 질긴 테이프 한 끝를 잡고 풀어주는 행사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그런 테이프 주고받기 식의 이별 행사도 너무 짧은 시간이라 여겨진 것일까? 휴대폰의 전파 통달거리라는 한계를 가지고, 별리의 순간들을 길어지게 대치시키면서, 먼 항해에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