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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의 솔을 맞대 놓은 뜻은?

내 방 사워장에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를 작은 변화가

by 전희태

캐나다 밴쿠버항. 항상 같이 여행하고 싶었던 곳으로 선원 가족 동승제도 생긴 후 같이 갈 수 있었다.

IMG_0120(5223)1.jpg 서로 포옹하듯 마주보게 수납시킨 칫솔의 모습.



무사히 출항을 한 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며 살펴본 내 방 사워장에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아내기가 힘든 작은 변화가 생겨난 걸 발견한다. 거의 2 개월이 넘는 시간을 떨어져 있었던 아내가 며칠 전 입항 첫날 배로 찾아와 생활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남겨 준 내 방안에서 물건 배치가 달라진 작은 일을 알아낸 것이다.


입항하기 일주일 전쯤부터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의 칫솔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아내가 지난 항차에 배를 방문했을 때 사용했던 칫솔과 같은 회사의 같은 모양의 제품이라, 아내 것이 빨간색이니 내 것은 파란색의 몸체를 가진 것으로 하여 수납대에 꽂아 두었었다.


같은 회사의 같은 종류의 제품이므로 똑같은 키에 똑같은 모양으로 단지 색깔만 다른 두 개의 칫솔이 솔 부분을 앞으로 보인 채 좁은 공간에 나란히 꽂혀있는 모양으로 말이다. 칫솔 브러시 끝이 상대방을 외면하고 제 앞만 나란히 보게 하는 방법이 그나마 위생상 나을 것이란 이유로 삼아 그냥 옆에 세워서 각자의 앞쪽만 바라보게 수납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포항 기항 시 아내가 배에 와서 자신의 칫솔을 사용한 후, 수납대에 걸어줄 때 사용 전에 놓인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칫솔 머리를 왼쪽으로 돌려준 상태로 넣어놓고 떠났던 것이다.


더하여 내 칫솔을 쳐다보는 형태로 했을 뿐 만 아니라, 내 칫솔의 상태도 일부러 손을 대어 오른쪽으로 돌려주어 아내의 것과 칫솔 면이 서로를 어루만지며 정면으로 마주 보는 형태가 되도록 만들어 놓고 귀가를 했던 것이다. 마치 서로의 <사랑도 확인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게> 입이 닿았던 부분을 더욱 가까이 마주 보게 하여,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요?

하는 말을 시키고 싶고, 듣고 싶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라고 아내의 텔레파시가 전달되어 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늘 떨어져 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나에 대한 아쉬움을 서로가 가까이 사용하는 물건을 밋밋하게 나란히 세워 평범하게 흘릴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마주 보는 포즈로 만들어 주어 그간의 헤어져 살아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 극복하고픈 희망사항을 그렇게 표출시킨 게 아닐까? 혼자 속으로 짐작하면서 쓰지만 달콤한 향기 품은 미소를 지어본다.


그런 조그마한 행동에서도 아내가 나를 향해 갖고 있는 끝없는 사랑과 믿음과 바람을 읽을 수가 있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도 들지만, 짠하니 다가오는 애잔한 사랑의 아픔 또한 코끝을 어루만지게 한다.


이제 아내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항해에 다시 빠져 들고 있는 데,

차라리 내가 먼저 칫솔의 나라에 그런 참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줄 건데.....

작은 후회를 머금은 달콤한 심정이 살며시 찾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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