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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동승 신청하다.

어쨌건 선원을 위한 바람직한 복지정책

by 전희태
DSCF0038(2370)1.jpg 아내와 동승으로 호주 뉴캐슬항을 찾았을 때 공원에서.



지난 항차 포항에 입항하기 얼마 전에 이번 항차가 호주로 결정되는 걸 보며, 다음 항차 역시 호주로 결정이 된다면,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동승 신청을 하리라 작정하면서, 아이들의 겨울 방학을 기다리며 같은 생각을 가졌던 기관장과도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다.


출항 후, 다시 항해에 익숙해질 무렵, 식사 후 식탁 담소 끝에 기관장은 아이들도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부인과 아이들 두 명이 한꺼번에는 허가되지 않을 거라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더니 두 아들을 포함한 여행을 못할 바에야 동승 신청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같이 신청하자고 이야기를 맞추고 있었기에, 아내에게 여권 갱신을 하여 동승에 대비하라고 이야기 한 나만 괜히 실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오후의 안품회의를 끝내며 선원들 중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청하라는 내용을 선내 공고로 띄워 놓았다.


어쨌거나 가족 동승을 우리가 결정하고 신청하면 거의가 다 허가되는 형편인데, 나만 그런 편의를 누리려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원들 중에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떠나자는 뜻으로 공고를 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자가 배를 탄다는 사실 자체를 터부시 하던 분위기를 고이 간직하며 이어오던 우리나라 해운 역사에서 선원 가족들의 동승제도가 처음 실시되도록 도입되든 일은 선원들을 위한 바람직한 복지정책의 으뜸으로 평가되는 너무나 획기적인 해운 역사에 남을 일로서 선원들에겐 기억되고 있다.


해운사들은 앞 다투어 가족 동승제도 도입을 발표하며 굉장히 큰 선심을 선원들에게 쓰는 것 같은 생색을 내었고, 자랑스러운 홍보도 대대적으로 하면서 어쩌면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동승 신청이 폭주하는 건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이용하여 가족 동승에 참여했던 선원들의 숫자는 누구나 예상했던 처음 생각했을 때만큼의 숫자에 다가서지 못한 훨씬 못 미치는 결과에 회사나 선원들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그 이유를 짚어 보면서 실은 다시 한번 더 선원 직업의 이가정성을 뼈저리게 느꼈으니, 부부가 모두 떠난 가정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돌 볼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고, 여타 다른 가정 문제에서도 동승을 떠난 기간만큼은 일종의 모든 가정 활동이 멈추어진 상태나 다름없어 그 후유증을 생각하는 가족들이라면,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덥석 동승에 나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갓 결혼 한 신혼부부이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난 거칠 것 없는 노부부나 되어야, 남은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이 좋은 제도의 혜택을 넘겨다 볼 수 있는 형편이니 동참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여간, 대부분의 선원들은 그저 말뿐 일 수밖에 없는 동승제도의 홍보라도 만나게 되면 빛 좋은 개살구 쳐다보듯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인양 지나치는 예전과 마찬가지의 생활을 해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선원들이 가진 가정적 약점으로 인해 생각만큼 에 미치지 못하는 신청자를 받게 되어 회사는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는지도 모를 거라 억지 짐작도 해본다.

아울러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어쩌면 회사의 경영자들은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제도를 벌써부터 시작하여 생색이라도 한껏 내는 것인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을지도 모를 거라는 추측마저 한술 더 보태었었다.


나는 이 제도가 시작된 초창기인 92 년도에 왕복 한 달이 넘는 겨울철 북태평양의 황파를 넘어서 캐나다의 로버츠 뱅크(밴쿠버항)에 다녀 오든 항해에 아내를 동승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도 다 컸지만, 그나마도 그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며 집을 지킬 수 있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던 동승이었다.


그 동승이 지루하고 힘든 겨울철 북태평양 항해였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반나절 동안의 밴쿠버항 상륙을 경험하면서, 그래도 그곳 하늘의 푸르름과 그에 어울린 아름다운 구름 모습에 찬탄만 하다 그쳐 버린 것 같은, 미진한 점을 아내의 뇌리에 남겨 주었기에, 다음번 호주의 뉴캐슬이라도 찾게 되면 다시 동승 신청을 하리라 속다짐 하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주는 우리와 계절이 반대이고 풍물 역시 풍부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세계 3대 미항에 꼽히는 시드니 항구가 바로 그 뉴캐슬 항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순위의 곳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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