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 내로 물이 스며들어 오는 거야?

약간 짠맛은 있지만 해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by 전희태
D220(3825)1.jpg 항해중 선창 검사 및 청소 광경



아직 바람이나 파도가 완전하게 잦아들어 조용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흔들림이나 충격이 많이 누그러졌고 어쨌거나 선창 청소를 빨리 진행해야 할 시간적인 닦달이 슬슬 시작될 형편이라, 며칠 전부터 벼르던 아침 과업을 선창 청소로 결정하였다.


아침 8 시. 청소를 할 선창의 해치커버를 안전하게 열어주기 위해 배의 선수(뱃머리)를 파도가 쳐오는 쪽으로 돌려세워서 흔들림을 최소로 만들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당직 조타수도 작업 현장으로 내려갔고, 당직사관인 3항사도 청소 작업의 일손을 도와주라고 이미 내려 보냈으니, 그 항해당직이 내 몫으로 남겨져 나 혼자 브리지를 지키는 상태이다.


배를 돌리려면 설사 3 항사가 있어도, 내 명령에 따라 시행해야 할 일이니, 어차피 내가 할 일이다. 단지 지시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을 써서 시행하는 게 달라진 것이다.

-덱크 감도 있어요?

하고 워키토키로 작업 현장을 부른다.

-덱크입니다. 말씀하세요.

하는 응답을 받아낸 후,

-해치카버를 지금 열어야지요?, 그럼 배를 돌려도 됩니까?

확인시키며 대답을 기다린다.

-브리지! 데크. 데크는 준비되었습니다.

-예, 그럼 지금부터 배를 돌립니다.

응답을 하면서 조타기를 자동조타에서 수동으로 레버를 전환시켜 준 후, 타륜을 왼쪽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지금 침로로 고정합니다. 즉시 작업 시작하세요.

잠시 후 선수가 제대로 잡히도록 타륜을 조절해주며 연락을 준다.

-예, 알았습니다.

정침 된 기색을 느낀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이윽고 5번과 7번 창을 모두 반쯤 열고 자키를 내려서 해치 카바를 레일 위에 고정시킨다.


-햇치 폰툰을 모두 오픈하여 고정시켰습니다.

-알았어요. 침로를 다시 원대 복귀시킵니다.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으며 다시 키를 돌려 원래의 코스로 침로를 잡아가고 있는데 이미 홀드(선창)로 내려간 일항사의 목소리가 워키토키를 울린다.

-삼항사 감도 있나?

-예, 삼항사입니다.

-지금 곧 5번 창 좌현 빌지 펌프를 돌리도록 해라.

갑판 위에 있는 3항사에게 지시하는 소리를 듣고 얼른 끼어들었다.

-일항사, 홀드에 빌지가 많이 찼나?

-예, 벌크헤드 벽면을 타고 물이 많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 파공이라도 생긴 것 같나?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물맛을 봐, 짠물이면 어디가 새어 나오는 것이고, 청수라면 땀이 흘러나오는 것이겠지.

-예, 약간 짠맛은 있지만 해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알았어, 6번 홀드에서 새는 것은 아닌 것 같군. 그럼 다시 한번 잘 살펴보고 이상이 있으면 연락해.

하고 통화를 끝낸다.


포항에서 출항하기 전 6번 선창에 실었던 해수 발라스트는 11월의 추운 기온 하의 바닷물을 실어 준 것이기에 현재의 수온도 실릴 당시에서 몇 도 이상 더 오르지 않고 있는 냉한 상태이다.

그러나 주위 바다는 이미 내일모레쯤이면 적도에 다가서는 열대의 남태평양이니 대기의 온도가 30 도를 웃돌며 습기도 많이 머금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 온도차는 해치커버를 열자마자 그 더운 공기가 홀드 내로 유입되면서, 찬 벌크헤드면(선창과 선창을 구분 짓는 격벽으로 수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에 닿는 순간 대기(홀드 내 포함) 중의 수증기가 그대로 물로 변하며 벽면을 타고 흘러내린 때문에 생기는 결로(結露) 현상으로 생긴 물이라고 단정 지으며 일단은 한숨 돌린다.


이 배는 아홉 개의 선창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용적은 석탄을 싣는다면 대략 15,000톤에서 20,000톤 정도까지 실을 수 있는 상황으로 아홉 선창 모두를 합하여 160,000톤 정도를 운반할 수 있는 배다.


그런데 대양을 빈 배로 항해하는 것은 선체 종, 횡강력 모두에 어려움을 주어, 쉽게 이야기하면 너무 길이가 길어서 파도 등에 잘못 힘이 가해지면 가운데가 부러지는 해난을 당할 수도 있어서 그 방지를 위해 적당량의 해수를 발라스트(바닥짐)로 선적하는데, 6번 홀드는 경 흘수시에는 발라스트를 싣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포항을 떠나기 전에 실려진 발라스트가 추운 겨울철의 수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상태에서 옆방의 벽에 들어붙는 더운 대기를 만나게 되니 그 대기 중에 포함되어있던 수증기를 물로 만들게 한 것을, 혹시 격벽에 구멍이 나서 해수가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하니 놀랬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어때?

한참을 현장의 보고를 기다리다 참지 못해 물어보니,

-예, 물맛이 이제는 소금기가 없이 완전히 청수입니다.

하며 격벽이 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은근히 강조하는 대답을 해온다.

-7 번창은 어떤가?

-7 번창도 조금 물이 생기고 있는데 심하지는 않습니다, 한다.


대답을 듣고 보니 6번 창에 넣어진 물이 5번 창에게는 뒤쪽의 벽을, 7번 창에게는 앞쪽의 벽면과 닿아 있으니 앞으로 달리고 있는 배의 운동으로 봐서 5번 창 쪽에는 바람이 직접 와서 닿는 양이 많을 것이며 7번 창은 아무래도 바람을 등진 벽이니 5번 창보다는 훨씬 부딪치는 대기의 양이 적으니 이슬도 그만큼 적게 만들어지는 상황이라고 유추해 본다.


모든 것을 확인하고 갑판에 있던 일과팀이 청소에 들어간다. 더 이상 챙길 것이 없는 나는 계속 항해 당직을 대신서는 것에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어 브리지 내를 서성이다가 운동 삼아 돌기 시작한다.

아침 운동에서 좀 미진했던 운동량을 채운다는 각오 아래 40 여분을 돌고 나니 후줄근하니 땀이 솟아 나오며 등 한가운데를 물꼬가 터진 논고랑 타고 가는 논물 마냥 흐르는 땀으로 인해 근지러워진다.


빨리 내려가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워키토키로 3 항사를 불러 브리지로 올라 와 교대해 주도록 청 하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 정도 당직을 대신 서준 것이면 선원들을 위해 충분한 도움이 되었으리라 여기며 불러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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