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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달력을 걸면서

연초 새 달력을 볼 때마다 갖는 마음

by 전희태


DSCF0278(9276)1.jpg 꽃말이 <변하기쉬운 마음>인 수국



회사에서 보내준 회사 달력과 새해 개인 문방 용품들을 각 부서별 또 사관 별로 배분해 주려고 들여다보다가 달력은 좀 더 있다가 배분해 주기로 생각을 바꾸기로 한다.


새해가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란 느낌이 문득 솟아났기 때문이다.

새해 달력이니 새해 1월 1일부터 사용되는 것이지만, 매달의 달력을 중앙에 그려 넣고 전달과 다음 달의 월력이 그 위와 아래에 삽입되어 함께 석 달을 볼 수 있게 만들어진 달력이다.


그러니 새해 1월 1일부터가 아니라 금년 12 월 1일부터도 사용할 수 있는 달력이므로 지금이라도 그 달력을 나누어 주기만 하면 모두들 받아 들기가 바쁘게 당장 맨 첫 장의 카버를 걷어내고 즉시 사용하려고 서두를 것이란 점이 불을 보듯 뻔한 게 싫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새것을 좋아하는 속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한 달 먼저 새해를 만난다는 자체가 진짜로 한 달이란 내 생애의 금쪽같은 세월을 무위로 흘려보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특히 선원들의 항해 중 달력을 대하는 태도는, 어서 빨리 지루한 항해를 끝내고 싶다는 소원이 달력의 일력을 미리 뜯어 내 주기만 하면 날짜는 저절로 빠르게 지나가 주는 걸로 믿는 사람들처럼, 월말의 하루 전이나, 어떤 때는 수일 전에, 이미 찢어 넘겨 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크다. 나 역시 전에는 그렇게 행동하던 주체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주어진 세월의 한정을 눈치채고 나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연초에 새 달력을 나눌 때부터 그런 식의 취급을 당하는 게 싫어서 그야말로 연말의 마지막 날 전쯤에나 나눠 줄까 생각을 바꿔보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 주었으면 하며 달력으로 버리는 날들의 의미를 그냥 뒤집어 보면, 하루라도 빨리 인생의 종착역으로 달려가려는 행위를 스스로 모른 채 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안타까움이 그 안에 배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미 내 생애의 반 이상을 보내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세월에 대한 더욱 각별한 아쉬움을 품게 되는 게 아닐까? 설사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많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시간 다툼을 하며 아껴야 할 세월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니 잊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는 타인을 보며, 못 본 채 지나쳐 주기엔 세월에 대한 내 애타는 애착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긴 해도, 선원이란 나의 직업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게 강요하듯, 반대의 다른 상황도 부여해주며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한 시간, 아니 일분, 일초라도 빨리 헤어져 있는 가족과 만나고 싶다는 애타는 심정을 부추겨 주어, 생의 종말을 향해 다가서려고 용쓰는 일이란 점을 잠깐 잊으라 덮어주면서, 세월에 대한 이성을 떠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날짜야! 한시라도 빨리 지나가거라!-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과 빨리 만나게 해다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빌어 보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형편을 가지는 게 선원의 삶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멈칫거리며 달력의 배분을 늦추기로 작정하면서도, 내방 달력만은 기왕지사 펼쳐 놓은 일이니, 치웠다가 다시 꺼내 거느니 그대로 걸어 두자는 심정으로 방벽에 걸어 놓은 채 그냥 놔두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습관처럼 겉 장을 떼어 주면서 벽에 걸고 있다.

<아아 사람들이 새 것을 좋아하는 습성을 나도 역시 갖고 있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다가서며, 어쩔 수 없는 소시민적인 내 행동에 피시기 고소를 머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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