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 청소를 돕는 소나기
이번 항차에는 깨끗하게 석탄이 실려 별로 떨어진 찌꺼기 화물이 없어 출항 후 통상적으로 해수를 끌어올려 행하는 갑판 청소를 하지 않고도 견디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실렸다 해도 역시 어느 정도의 흩어진 찌꺼기는 있기에 갑판을 나갈 때마다 껄끔거리는 느낌이 운동화 바닥을 통해 전해지곤 한다.
한 번쯤 비가 와서 빗물로 닦아내 주기를 바라건만, 비 소식은 없고 뜨거운 열기를 품은 해님만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구러 호주 해역을 벗어나서 어느새 코랄 해를 지났고, 조마드 수로를 통과하여 솔로몬 해에 들어서니, 그제야 기다리던 단비가 새벽녘의 갑판 위에 뿌려지고 있다.
나의 새벽 운동을 방해하는 자연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론 기다리고 있던, 청소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중도에 운동을 포기하고 방으로 올라오는 경우를 당하면서도 억울한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선수루를 돌아 거주구 쪽으로 향하여 되돌아오려고 할 때 재미있는 경험까지 한다.
비가 오기 전에 이미 해낸 운동에 의해, 땀이 머리카락 속에서 송알송알 맺히어, 이제나 저제나 흘러내리려 할 정도로 생겨 나 있었다.
그런데, 비를 몰고 나타난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어 치니 머릿속을 훑고 지나는 그 센바람의 밀어줌에 의해 두피 위로 솟아나 있던 땀방울들이 그대로 밀려나서 우수수 떨어진다.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 땀방울들이 머리카락 끝을 타고 마치 비가 뿌려 치듯 내 얼굴 앞을 스쳐 휑하니 날아가버리며 머릿속을 절로 시원하게 만드는 산뜻한 경험을 주는 것이다.
비 오는 동안 바람이 앞쪽에서 좀 거세게 몰아쳐서 배의 속력이 떨어지니 GPS 계기는 포항의 도착 예정을 2000년 1월 1일 0100시로 표시하는 화면도 보여줬다면서 당직 중이던 일항사는 이 계기는 <Y2K 문제>가 걱정 없는 계기라는 확신을 심어 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컴퓨터의 대란이라는 <Y2K 문제>가 그렇게 별 사고 없이 지날 수 있는 기미를 보여 준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란 걸 감사히 여기지만, 그래도 모든 항해 계기의 작동을 수시로 체크할 것을 다시 한번 더 당부한다.
새벽녘의 비가 오던 기세와는 달리 아침 식사를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날씨가 개이기 시작하는 상황을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아쉬움을 가지고 맞이한다.
아직은 좀 더 빗물이 내려서 갑판 위를 쓸어 내줬으면 바라게 하는 석탄의 큰 가루 더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