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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 탈진(氣力 脫盡)으로 인한 혼절(昏絶)

무리한 작업 속개가 부른 사고

by 전희태


지부랄탈3.JPG 배도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이런 사고를 당하는데... 사람도 잘못 판단하면....


점심 식사를 하고 난 후, 오후 과업이 이미 시작된 시간인데 일항사가 바쁘게 찾아와서

-조기장이 혼절하여 쓰러졌습니다.

느닷없는 보고의 말을 하고는 바쁘게 아래층 사고의 현장을 찾아 내려간다.


정확한 내용도 모른 채 우선 방을 나서면서 건너편의 기관장 방을 본다. 놓여있는 신발로 봐서 기관장이 방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아직 그런 사고가 난 것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니 그 방을 찾아가서 노크를 하며 일항사로부터 들었던 같은 이야기를 알려주니 놀랜 표정의 기관장이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온다.


같이 아래층으로 급히 내려가는데 중국교포 선원 허 군이 땀에 흠뻑 젖은 작업복 차림에 좀 멍한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치고 있다.

그는 오늘 조기장과 같은 조를 이루어 작업을 시행한 사람이기에 얼른 붙잡고 물었다.

-조기장 지금 어디에 있지?

-좀 전에 병원 방으로 옮겼는데요.

대답하는 그의 표정이 정상을 벗어난 어딘가 힘든 모습으로 보인다.

-자네 몸은 괜찮은가?

하니 괜찮다고 대답을 하지만 계속 멍한 표정이라 좀 쉬라고 이야기해준다.


우선은 조기장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바빠 얼른 병원을 찾아 3층으로 가는데 누군가 조기장이 자신의 방으로 옮겨 갔다고 전하기에 다시 2층 조기장의 방으로 돌아섰다.


일기사를 비롯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방바닥에 눕혀진 조기장의 몸을 열심히 마사지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혈압과 체온을 재고 맥박도 체크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나는 혈압측정기를 찾으러 다시 내 방으로 올라왔다.


내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승선 시에 구입하여 갖고 온 혈압측정기를 찾아들고 다시 조기장의 방으로 갔다. 즉시 혈압을 재니 110-145로 좀 높은 편이다.

이마를 짚어보니 체온이 싸늘하니 느껴지어 떨어진 체온을 올리도록 전기장판을 깔아주고 침대로 옮겨 눕혀준 다음 담요를 덮어주며 혈압을 다시 재니 80-125의 정상적인 수치로 변해 준다.


하트만이라는 영양제를 정맥주사로 놓아주기로 하고 따스하게 데워주는 준비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오늘의 이 사고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수습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마음 간절하다.


이렇게 사고가 터지고 보니 우리 모두가 이 사고를 위해 도와주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는 자성으로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일 첫째가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체크 리스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위험작업 허가서의 신청이나 발부를 형식적으로 주고받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연 사흘을 같은 작업을 위해 같은 인원을 투입하여서 그야말로 진이 빠지고 기력이 탈진되도록 방치하고 있었으며, 자꾸 지연되는 작업에 힘들어하면서도 너무 책임감에 몰리어 무리하게 작업을 하려는 그들의 행위를 강력히 말리지 않고 있었다.


셋째로 오늘 점심식사 끝날 때까지 식사를 하러 들어오지 않았던 그들의 행적에 대해 아무도 거들떠본 사람이 없었던 점이다.


환자는 말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작은 몸짓으로 대답은 하지만 직접 말을 하기는 어려워하고 있다. 실신했던 시간으로부터 세 시간 정도 지나간 네 시쯤에는 체온과 맥박이 정상인 36도 8부와 맥박이 78회로 되었고 잠이 들어 있다는 보고를 받으며 한 시름 놓았다.


중국 선원 허(許)군도 자기의 침대에서 좀 쉬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다는 보고에 가스 중독보다는 뜨거운 열기가 후끈거리는 속에서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탈진한 상태로 되어 그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원인 추정을 한다.


좌현 3번 톱사이드 탱크 내를 관통하여 4번 창 좌현 빌지 박스로 내려가는 빌지 사운딩 파이프의 중간에 파공된 부위를 통해 발라스트 해수가 4번 창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톱사이드 탱크에 있는 파이프 전부를 들어내고 새 파이프로 교환하기 위한 용접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발생한 사고였다.


열대 해역의 뜨거운 햇볕이 사정없이 갑판을 쪼여주니 그야말로 찜통 안 같은 불볕더위를 만들어 준 탱크 속에서 용접작업을 하였으니 가스까지 합쳐지어 숨쉬기도 편치 않았던 힘든 상황이었다.


연 사흘을 작업했으면서도, 아직 끝을 못 내고 있는 상황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작업팀장인 조기장이 무리하게 끝맺음을 하려고 강행군하고 일을 마무리 지은 후 밖으로 빠져나온 후 그냥 쓰러지게 되어 생긴 사고였다. 나중 정신이 든 다음 혼절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맡은 바 하던 용접 일을 모두 끝내고 페인팅까지 해 준 후 작업장을 벗어 나왔단다. 더위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힘이 다 소진된 느낌에 어지럼증까지 생기며 손가락 한 개 까딱거릴 여력조차 없어져서 그냥 그늘 진 갑판에 주저앉았단다. 이어진 현상이 한없는 캄캄한 어둠으로 찾아오더니 급격히 밑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감각에 당황하였는데, 인지 상황은 거기 까지었단다.


갈아 준 파이프에 페인트까지 칠해 주는 무리한 강행군으로 마무리 지은 후 힘들게 갑판으로 올라와서 거주구를 향하려다가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있다가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 같은 묘한 어지럼증에 정신이 팽그르르 돌면서 주저앉은 거란다.

그 후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통 기억에 없고 정신이 들어보니 팔뚝에 링거 주사기가 꽂혀있고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더라고 이야기를 한다.


오후 다섯 시. 따르릉 책상 위의 전화벨이 갑자기 울린다. 이번에는 또 무슨 불길한 소식이 전해지려고 그러나 하는 흠칫 놀라는 마음으로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다가 얼떨결에 놓치기까지 하였다. 다시 들어 올리는데 일항사의 말이 전해져 온다.


-저, 일항사 입니다, 조기장이 이제 정신이 완전히 들어 활개를 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으응 그래. 다행이군, 내일쯤 이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수고했어.


전화를 끊는 순간 안개같이 스며있던 불안한 마음이 모두 걷힌 홀가분한 심정이 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쨌거나 이 정도로 사고가 끝나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음을 조심하라고 강조하며 보내준 메시지로 알고 더욱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계기로 챙기리라 작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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