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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근무로 가는 길

사진:육상 부두와 배를 연결하는 통로

by 전희태


포트헤드랜드07.JPG 가깝고도 먼 육상과 본선의 사이를 나타내는 듯한 접안한 모습


내방 위층에 있는 통신실에서 독특한 음색으로 뱅뱅 거리는 독촉의 전화기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음의 종류가 일정한 음색,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나는 걸로 봐서 위성 전화인 것으로 판단되어 얼른 뛰어 올라가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마침 통신실에 사람이 없어서였는데, 때 맞춰 기관장도 자신의 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뛰어 왔지만 아무래도 내 방이 가까웠으므로 먼저 올라가서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귀에 익은 본선 담당 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본선의 일등 기관사를 육상근무 직으로 차출하려는 데 본인의 의사가 어떤지를 물어보기 위해서란다.


지난 11월에 회사 전 선박에서 제출한 <99년 하반기 선원 인사고과> 중- 일기사들의 평가 가운데서, 본선의 일기사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때문에 육상 자리에 결원이 생겨나자 제일 먼저 추천이 되었단다.


그러나 근무 부서는 우리 선단이 아닌 타선단 이란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일이라 급하게 통신실로 일기사를 불러 올려 당사자의 의견을 물었다.

본인도 곧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니 육근이 가능하다면, 원한다는 대답을 해서 그대로 전해 주며 통화를 끝내었다.


우리는 빼앗기는(?) 일기사를 대신할 사람을 연가 후 대명자 명부에서 찾기 시작하였고, 기관장도 알고 나도 아는 한 친구의 이름을 같이 떠 올리어 즉시 회사로 전화를 걸어 가능하면 그 사람으로 교대시켜줄 것을 요청한다.


문득 30년 전에 나에게도 그렇게 육상 근무를 하겠는가? 하는 의사 타진이 회사로부터 전달되어 와서 육상근무를 하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는 육상의 어느 누구도, 또 어떤 부서에서 나더러 육상 직에 근무해 달라는 필요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그런 곳도 없는 형편으로 세월만이 나를 친구 하여 오늘에 이르러 있다.


그동안 별로 큰 과오 없이 오늘에 이르렀고 승선 생활을 할 수 있는 날까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하다가 명예롭게 퇴진할 것을 바라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우리 배를 떠나 육상 근무를 작정하려는, 일기사에게 어쭙잖은 충고지만 해주기로 한다.


-다시 배로 나오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신으로 일해야 하는 거야!

-육상에 가게 돼도 여기서 같이 정말 열심히 해라!

내 경험을 곁들인 육상 근무를 각오한 마음 가짐과 생활 태도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나는 육상에서의 살아갈 기회를 2 년간만 누린 후, 스스로 팽개치고 떠나온 지난 세월 속에 그 결정을 후회해 본마음으로 생활한 적이 한두 번 있었기 때문이다.


배를 타는 직업을 택하려고 항해학과를 졸업했으면 기왕에 시작한 일, 사나이로서 끝장을 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너무나 소박한 마음으로 육상에서의 일을 접기로 하고 다시 배로 가는 직책으로 돌아갔던 나였다.


그렇게 지내 온 세월 속에서, 재승선을 결정하고 실행한 내 결심을, 후회해 본 경험도 한두 번 있었기에,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육상에서 근무할 때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해 근무하는 마음 가짐이 꼭 필요하다고 믿어지게 된 것이다.


순간순간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여,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 대는 태도로 현실의 어려움을 대할 때, 이미 그 일에서 일등을 할 기회는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도 역시 남 앞서 가기는 그른 일.

이제와 깨닫게 된, 그런 태도는 경계해야 할 일이란 점을 강조하여 보태줘 보는 충고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오늘 회사에 나가서 동승하는데 필요한 교육을 받으며 여권도 전해 준 모양이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이렇게 아내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모든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경험을 만들 수 있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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