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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좋아 약이 올랐던 이유

기상상황이 뱃사람에게 끼치는 영향

by 전희태
F1_(5570)1.jpg 날씨가 좋은 날. 해치커버를 페인팅 하는 모습.



청명한 대기로 맑게 개이고,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고, 겨울 날씨답지 않은 따뜻한 바다 위를, 배도 그냥 서 있는 것 같이 흔들림이 없이도, 잘도 달리고 있는데 내 마음은 오히려 약이 바짝 오르고 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인 이렇게 좋은 날씨에 약이 오르는 이유는 단지 어제 날씨와 비교가 되어서이다.


금 항차 항해하는 기간 동안 선원들이 행할 선내 작업 가능 시간을 선창 청소와 발라스트 해수의 주수나 배수 작업등에 거의 다 빼앗기니 우리에게 남겨진 선체 정비를 위한 시간은 너무 촉박하기가 일쑤였다.


어제 까지도 날씨가 꾸무럭대며 비도 몇 방울씩 떨어지고 더하여 바람에 곁들인 파도가 살짝궁 선수를 넘기는 것을 감당하면서도, 선체정비가 너무 바쁜 일이라 5번 창 해치 카버의 녹을 두드렸는데, 결국 해수의 소금기 비말(스프레이)이 선체 중앙부인 작업장까지 너무 자주 날려와서 대충하고 끝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과업은 외부 비바람에 영향이 적은 거주구 안쪽 부위의 청수 탱크 내부 청소로 결정하여 어제 같은 나쁜 날씨가 계속되어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로 택했던 것이다.

헌데, 빗나간 날씨 예측으로 이렇듯 화창하고 아까울 정도의 날씨로 되었건만, 외부 작업을 안 하고, 내부 탱크 청소나 하며 보내게 되었으니 약이 오르게 된 것이다.


날씨가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그 두 가지 작업을 서로 바꾸지 않고 어제의 작업을 계속 이어서 시행함이 아주 금상첨화였을 텐데, 다시 바꿔서 하기에는 모두가 미룰 수 없는 바쁜 항목이라 일의 진행상 또다시 바꾸기도 머쓱해진 상황 되어 그리 된 것이다.


오늘의 날씨가 좋으면 좋은 만큼 더욱 나의 판단 미스가 부각되는 셈이라 약은 약대로 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화내는 약발은 이제 그만 받기로 하고, 다시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기로 스스로에게 청하기로 한다.


이틀 후면 우리 배가 도착해야 하는 포항까지 끌고 가게 되는 날씨가 아주 그럴싸하니 밝고 명랑하고 춥지 않은 겨울 날씨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한 거다.


항구에 들어갔을 때 입항 수속 차 만나게 된 사람들로부터

-선장님 배가 들어오기 전, 어제까지는 계속 날씨가 엉망이었는데, 선장님 배가 들어오면서부터 날씨가 이렇게 좋아졌네요.

그런 인사 말이라도 받는다면, 그건 마치 내가 그곳에다 좋은 일을 전달해 준 것 같은 뿌듯함으로 어깨에 힘을 주며 뒤로 젖혀보는 치기도 부려 볼 수 있지 않은가?


사실 바다 위에서 가장 바람직한 일의 첫째가 바로 맑고 잔잔한 날씨가 주워지는 것이니, 이 좋은 날씨를 그런 방향으로 돌려서, 환하고 맑은 날씨를 입항의 선물이라고 발상의 전환을 하고 나니,


어허! 오늘은 진짜로 끝내 주게 좋은 날씨이구나~ 새삼 감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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