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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는 대답은 시원한데...

참 힘들구나! 성에 차지 않는 시원한 대답~

by 전희태

캄보디아 앙코르 왓트의 부조.

IMG_4859(9116)1.jpg 공부하는 모습이라는데. 여기서도 뒤에서 졸고 있는 학생이 그려 넣어져있다.



오래간만에 선수가 항해하며 만나는 파도를 쳐 올려서 새하얀 포말을 흩날리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문득 지난번에 선수 쪽인 1번 창의 CROSS DECK에서 녹을 제거 하다가 HATCH COAMING에 파공(破孔)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 즉시 그 자리를 메우는 방법을 생각해 내어 조치하라고 지시했지만, 해결한 결과에 대한 최후 보고는 받지 못하고 넘겨 버렸던 게 떠 오른 것이다.


만약 그 부위에 어떤 조처를 가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선수로 올라오는 파도에 수침(水浸) 사고가 나겠구나, 우려되는 마음이 들어서니, 그 후 어떻게 처리했는지 새삼 알아보기로 한 거다.


당시 파공 부위를 막아주는 방법을 연구하여 실행하라는 지시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은 했었지만, 당장의 항해하고 있는 데는 별다른 영향이 없기에, 즉시 막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바쁜(?) 일들로 미적거리다가 그만 시기를 놓쳤고 우리 모두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갑판장이 부리나케 현장을 향해 나가 파공 부위에 임시조치로 걸레와 쐐기로 틀어막아주고 들어오려던 모습을 브리지에서 내려다보며 씁쓸한 심정을 품는데, 갑판장은 들어오려던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선수루 갑판창고를 향해 급하게 돌아서 간다.


선수 창고의 출입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여 닫아 주려고 그랬다며, 이미 조금의 수침이 선수 보슨 스토아에 발생해 있긴 했어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보고를 하려고 일부러 브리지까지 찾아 올라온 것이다.


만약 계속 열어둔 문을 방치하고 오늘 밤을 지나게 되었다면 점점 더 나빠지는 기상상태로 보아 제법 많은 양의 해수가 선수 창고에 들어차는 <아차사고>를 또 가질 뻔한 일이기도 하다.


더하여 보슨 스토아(선수 갑판창고) 안에서 작업공구 한 개와 담배 피우던 것 한 갑이 일회용 라이터와 함께 놓여있어서 가지고 나왔다기에, 그 유루품의 주인공이 선수창고에서 작업을 하던 중, 마지막으로 출입문을 열어둔 채 자리를 떠난 사람일 것으로 여겨 저, 즉시 그 주인을 찾아보기로 한다.


탁구장에서 탁구 치며 휴식을 즐기든 선원들한테 가서 그 물건이 누구의 것인가를 확인하였는데 3기사가 자기 것이라 인정하며 나선다.


지난 항차에 <선내 아차 사고의 사례>로 발표된, 톱 브리지 마스트에서 고소작업을 위해 걸쳐두었던 사다리가 일과가 끝난 후인 한밤중에 선체 동요로 인해 저 혼자 미끄러져 넘어지며 <꽝> 소리를 내어 여러 사람을 놀래게 했던 일도 3기사가 작업 종료 후 사다리를 치우는 뒤처리를 확인 안 하고 떠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그 친구의 미흡한 뒤처리(선수창고 출입문 개방)로 인해 선수 창고 바닥에 파도로 올라온 해수가 흘러든 일이 발생한 것이다.


방으로 불러다가 따끔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벼르는 데,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당사자인 3기사는 제 먼저 큰 소리로 잘못했다는 말부터 하고 나선다.


내가 배안에서 제창하여 실시하고 있는 <제자리로 돌려주기 운동> 차원에서, 항상 뒤처리를 염두에 두고 모든 작업을 끝내라는 말만 덧붙여주고, 더 이상 길게 부연하지는 않고 보내었다.

그러나 요새 아이들의 그 시원시원한 대답만 있는 행위가 아무래도 성에 차질 않는다.


실제는 항상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도 대답만은 우렁차고 씩씩하게 하여 그 순간의 어려움을 넘기는데 일조를 받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행위는 당장의 어려움이나 구차함을 피하기 위한 엄연한 거짓말이 아닌가?


하기 쉬운 대답으로 그 자리를 면했으면 진짜 다음번에는 똑같은 일로 다시 지적당하던가 꾸중을 듣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건데, 현재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임기응변의 처세술에 절로 혀를 차게 된다.

그렇다고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간섭하는 태도는 또 내가 잔소리꾼이 되는 일인 것 같고...,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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