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지연된 시간은 어떻게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오늘 오전 중으로 우리 배는 <떠나가는 배>로 될 예정이었기에, 전 선원은 오전 열 시 통 차로 귀선 하느라고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다. 그렇게 부두에 도착한 마지막 통선 안에서 예정했던 양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여 늦어진 상황과 마주치며, 출항 예정 시간이 자연스레 내일 새벽으로 20시간 정도 늦어지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늘어나서 연장된 시간만큼 국내에 머무르게 되는 시간이 보태지는 셈이니, 어렵게 얻어진 이 짧은 자투리 시간이나마 다시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일념에, 가까운 부산 등지에 가정이 있는 몇몇의 승조원은 다시 집으로 갔다.
망망대해를 항해 중일 때 선원들은 몸이야 집과 떨어져 나와 있지만, 마음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가정을 찾아 나서는 생활인이다. 그러므로 육지에 있을 때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 시공(時空) 모두를 가정을 위해 흔쾌히 투척하는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선원들도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꾸린 사람이지만, 이가정성(離家庭性)이란 특성으로 인해, 항상 가족과 만나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다는 점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기에 현실의 육상부서(회사)에서 근본적으로 행하고 있는 본선의 출항 예정 시간을 항상 빠듯하게 앞당겨 잡아 놓아, 조금씩 늦어지는 경우까지 대처하는 운용이 결국 아까운 자투리의 시간을 남기게 되는 관례에 아쉬움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본선을 담당하고 있는 육상의 직원에게 왜 그렇게 스케줄을 빡빡하게 운용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싱긋이 웃으며 할 수 없지 않으냐는 제스처로 대답 아닌 대답을 해 줄 뿐이다.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또 한 그 이유를 이해 못하는 입장도 아니지만, 선원들은 그렇게 자투리로 남게 되는 시간에 너무나 아쉬운 심정이 들기에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에이 참! 하며 안타까운 입매를 다시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집안에 자신이 있어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긴 경우에는 더욱 아쉬움에 애석해하며 결과적으로 그런 식의 운영을 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원망의 마음조차 가지는 것이다.
오늘 일에 있어서만큼의 내 경우야, 아내와 동승하여 떠나는 입장이므로, 극단적으로 말해 그렇게 늘어진 정박기간이 별 상관없는(?) 일로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 될 줄 알았으면 막내아들더러 내려오라고 할 것을 하는 배부른 아쉬움은 남아있다.
녀석은 어제 전화로 안부를 물었을 때,
-아버지, 지금 내려가 뵈어도 돼요?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예정보다 늦어지는 출항시간을 만나며, 우리 배 동료들은 자신들에 걸맞은 방법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중인데, 나는 선원들이 가족 재회와 그에 따른 시간의 모자람에 애달파하는 모습부터 떠올리고 있다.
선박의 운항에서 <시간은 돈>이란 화두(話頭)를 전제할 때, 선원들의 시간은 배의 육해 상에서의 모든 스케줄의 맨 끝에서 끌려 다녔던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아니 아예 배려되지 않은 상태라고 함이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화나 자동화가 남 먼저 빨리 진행되고 있는 해운과 선박에서, 이제 운항 시간 절약 방법을 논의할 때, 선원들의 시간을 별개로 제일 먼저 취급해야 할 사안으로 불거질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관련 육해상의 모든 시스템을 자동화하여 최소의 인원만으로 선박 운항을 해나갈 때, 선원이란 인적자원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체류시간은 이제 배려되어야 할 우선적인 항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박이 해상이나 육상에서 지체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최소화시킨 패턴의 운항으로 시간 단축이 이루어졌을 경우는, 오히려 그 배에 승선한 선원들이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인권을 향유할 시간에 더욱 제한받는 경우로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을 만나고 가정을 지키는 최소한 몇 시간은 보장하겠다는 조항이 선원들의 승선 조건의 첫째 항목에 들어갈 날도 멀지 않은 장래에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런 때가 온다면 지금같이 출항시간을 고무줄 같이 예정 잡는 일도 적어지고, 선원들은 자투리 시간에 울고 웃는 일도 없어질 거라는 상상의 결론을 어떻게 낼까?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그러나(육상 근무자-회사 임직원-중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음) 회사가 고용주 입장으로서만 피고용인 선원들을 대하면서, 그들이 승선 선원으로 근무하는 동안의 모든 시간은 회사가 지불하는 임금안에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막막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