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줬다가 병을 준 셈인 인사관리
선원 인사관리 팀에서 위성전화가 왔다. 그런데 일기사와 직접 통화를 해야겠다는 전언 만을 주고 있다.
혹시 이번 일기사의 교대 예정이 차항 귀국했을 때로 변경되어서 그러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오후 1시에 다시 전화를 걸어 올터이니 그때 1 기사와 통화 할 수 있게 바꿔 달라는 요청을 따르기로 했다.
본선에서 발생하는 모든 선원 인사에 관한 일은 원칙적으로 본선 선장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회사가 당분간 모른 체하고 있어주기를 원하는 상황으로 판단되어 묻질 않았던 것이다.
허지만 전화 걸어왔던 사람의 어조가 밝지 못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자신들이 일을 벌려 일기사의 육상근무 추진을 했던 결과에 이상이 생겨 직접 일기사 본인의 양해를 새롭게 구하려는 뜻으로 보여짐은, 현재 본선과 인사부서간에는 별 다른 껄끄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새벽 항해당직(오전 4시-8시)을 끝내고 한참 자고 있을 일기사를 12시에 점심 식사를 하러 오라는 전언을 보내어 11시경에 깨웠다.
평소 같으면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은 일기사이지만, 오늘은 깨우니 금세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온다.
-한 시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해서.....
-무슨 일인데요?
궁금한 마음을 금세 표출시키며 일기사가 묻는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전화만 해달라고 하니...
식사를 끝낸 일기사와 함께 통신 실로 올라가서 전화를 걸었다. 오후 1시이다.
잠시 후, 전화를 건네받은 일기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며 어조도 딱딱해진다. 별로 밝은 대화가 아닌 게 틀림없어 보인다. 육상근무 예정에 중대한 변동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점점 더 든다.
전화를 끊고 난 일기사의 표정이 많이 일그러진 굳은 표정으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일기사의 육 근 예정은 없었던 일로 되었으니 양지하고 본선에서의 근무를 잘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하더라고, 생각을 멈추어 전하고는 자리를 떠 버린다.
-약혼자에게 육근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니 참 좋아했었는데...
하는 아주 서운한 감정의 코멘트를 혼잣말 같이 되뇌면서.
사무실에서 그야말로 확실하게 마지막 육근 확정을 결정시킨 후 그 결과를 통보해 주었다면, 이번 전화가 그 하선하는 수순을 설명하는 화기애애한 통화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절로 찾아든다.
현장에서는 마지막 결정까지 짓게 해 놓았던 것을 다시 번복하여 없던 일로 만들라니 그 풍파의 중심에선 사람의 심정은 어쩌면 사랑하든 사람한테 배반당한 느낌에 못지않은 서운함에 치를 떨 정도까지 되었으리라.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의 마음에 평지풍파를 일으켜 놓고 이제 와서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그만인 식의 뒤처리를 한다고,
그들 육상 근무 관계자들의 일 처리 방식에 혀를 끌끌 차주며, 구시렁거리는 말로 일기사의 마음을 다독여 보려는 방법을 생각해 본 내 모습이 초라해 뵈기까지 하는구나.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쓸쓸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일기사의 뒷모습이 아무래도 씁쓸하다.
나중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당장 사표를 쓰고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다는 1 기사의 마음을 달래느라고 기관장이 한참의 시간을 투자하며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어차피 사표를 쓰고 당장 떠나고 싶다고 해서, 바닷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가 항구로 돌아가기까지는-그것도 국내의 항구- 어쩔 수 없는 처지가 선원들의 환경이니 더 이상의 소란함 없이 지나가긴 했다.
그렇긴 해도 요사이 젊은 사람들의 그 발 빠른 행동 양식에서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사표를 던지고 뛰어나간다는 일의 번짐은 어떻게 막지 하든 의구심은 해결되었지만, 그래도 그가 받은 실망을 조금이나마 벗겨주기 위해 어쩌면 실행하기 좀 어려운 약속의 말도 또 덧붙여가며 달랬는지도 모르겠다.
일기사는자신을 알아주는 상관의 뜻을 거역하고 계속 삐쳐 나가는 우를 범하거나, 그간의 인간관계가 뒤죽박죽 악화되는 일이야 안 했지만, 결국 다음 항 차 국내 기항 시 연가로 내릴 때, 사표도 쓰고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말은 했단다.
결국 평지풍파를 일으킨 육상근무 파동으로 아쉽게도 유능한 일기사 한 사람을 회사는 잃게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