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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한바탕 소동

급체에 데한 민간 전래의 처방?

by 전희태


DS0055.JPG 브리지로 올라가는 계단


조마드 수로에 진입하기 약 한 시간 전.

해도에 표시해 준 위치에 도착했다고 브리지 2항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을 보니 새벽 0시 45분이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며 아내를 깨워서 같이 어둠에 잠긴 브리지를 향해 방을 나선다.

조마드라는 이름의 수로를 지난다니 얼마나 조마조마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냐고 묻던 아내에게 밤중에 지나는 좁은 해역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싶어 깨워서 같이 올라가는 길이다.


하나 조마드는 어디까지나 현지의 이름이지 우리말은 아니니, 조마조마 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그 이름에서 그런 연관성을 찾아낸 아내의 기발한 착상에 은근히 감탄하여, 실체의 조마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내 방문을 나서면 건너다 보이는 복도 반대편 끝에 있는, 기관장 방이 아직도 열려있다. 이 밤중에 무얼 하느라고 잠을 안 자고 있어 방문을 닫지 않았을까? 궁금증에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브리지를 향한 층계 오르기에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차광시킨 불빛으로 인해 해도대 위 만이 그나마 밝아있는 차트실로 들어서니, 기관장이 이미 올라와 있는 게 보인다. 웬일인가 싶은 내 표정에 저녁 먹은 것이 체한 것 같아서 손가락 끝을 따려고 올라왔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브리지에서 항해 당직 중인 갑판수 U 씨가 그 일을 잘 한다는 소문이나 있어 찾아왔는데 마땅한 바늘이 없어 찾고 있는 중이란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바늘을 갖고 오겠다며 다시 방으로 내려가더니, 혹시 이번 동승에서 쓰임새가 있지 않을까 준비해 가지고 왔던 바느질 바늘을 찾아들고 올라왔다.

손가락을 묶어주는데 쓰일 실을 바늘귀에 달려온 실로 써 보려 했지만, 너무 짧은 실이 꿰어있어 모자랄 것 같아 포기하고, 브리지에 있는 세일을 꿰매는데 쓰이는 굵은 실을 준비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묶어준 후 바늘로 찔러서 피를 내기로 한다.


한 시간 안에 좁은 해역으로 들어서 특별한 경계가 요구되는 항해구간이긴 하지만 다행히 그곳에서 우리와 만날 수있는 타 항양선의 출현은 아직까지는 없어 좀은 편한 마음으로 일의 추이를 지켜보며 선수전방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잠시 떠들썩한 목소리의 의견들이 오고 간 후, 왼손 장지의 끝에 바늘을 찌르는 순간 핏줄기가 뻗치듯 쏘아져 나가서 해도 위에 핏자국을 남기게 하여 당황해하는 말소리도 들린다.


이윽고 시술자 U 씨의 심하게 체했을 때는 그렇게 피가 많이 나온다며, 잘 처리되었으니 곧 나아질 것이라는 위로의 말소리도 그 가운데 들어 있다.

정말로 그런 경우 그렇게 피가 많이 나오는 것인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렇다는 사람과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비슷한 숫자이다.


그러나 아내의 의견은 그렇게 손가락 끝을 꽁꽁 묶어 피가 모이도록 압력이 가해졌는데 그 정도의 피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기관장은 원래 엄지손가락 끝을 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손을 대게 되면 간장에 치명적인 나쁜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아내의 주장(아내는 수지침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운 이야기란다.)이 먹혀들어, 가운데 장지 손가락으로 바꿔서 시술한 것이다.


다시 오른손 장지도 묶어 피를 내게 한 후 소화제와 활명수 그리고 사이다까지 마시어 체한 데 대한 조치를 모두 마치고 나니, 기관장은 가슴이 답답했던 증세가 많이 완화되었다는 기쁜 인사를 하며 방으로 내려간다.


브리지 당직자를 포함한 모두는 조마드에 다가서는 협수로 항해에 대비하여 어수선했던 주위의 분위기를 다잡으면서 좁은 수로의 항해에 대비한 준비를 마쳤고 아내는 한밤중에 지나는 조마드의 등대를 본다고 눈을 밝히며 앞을 내다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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