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남 앞서 나가는 이의 외로움?
이 사진을 찍으려는데 막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들의 쇼핑몰이 혹시나 경쟁사로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 같았지만, 우리로서는 그냥 관광이었으니...
어제의 상륙이 시간에도 밀리고 사람들에게도 치여서 천지 분간을 못하고 덤벙대는 어린애 마냥 행동하다 보낸 것 같아 오늘은 좀 차분한 마음으로 상륙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통차도 우리 배 혼자 쓰도록 했다.
대리점을 통해 선식 회사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주부식 선적을 실행하도록 요청하면서 오전 중에는 필히 끝내어 오후 한 시로 예정한 상륙 시간에 상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연락을 했는데 그들은 그 청을 들어주어 점심 식사 전에 주부식의 수급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상륙을 위해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갑판에 집합하여 막상 배를 떠나려 하니 GANGWAY LADDER가 부두의 LOADER로부터 내려지지가 않아 그를 기다리느라고 한참을 서성이었다.
금세 나타날 것 같던 관련 LOADER의 기사가 아무리 기다려도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DRAFT CHECK를 위해 준비해 둔 JACOB'S LADDER를 이용하여 부두로 내려서는 상륙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도 마치 유격훈련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며 줄사다리에 매달렸다. 호주에서의 두 번째 날의 땅 디디기를 위해 연출한 보기 힘든 광경이다.
모든 사람이 무사히 내려오는 것을 지켜본 후, 휴~우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중에 귀선 할 때는 승선을 안전히 게 할 수 있게 미리 대비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당직사관에게 남기며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향한다.
통차가 달리는 길은 크게는 어제와 같은 코스이지만 오늘은 다림풀베이는 거치지 않고 우리 선원들만의 단독 이송으로 차가 움직이게 되어 기다리거나 지체되는 일이 없이 시내까지 직행하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혹시 어제 못 보고 지나친 경치는 없는가? 눈길을 창 밖으로 고정시킨다.
아내도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창밖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창가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보이는 구릉의 목장에서는 누런 소들이 우리나라의 한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아니 그냥 한우 같다) 색깔로 여기저기서 되새김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런 소를 가져다가 한우라고 하면 안 속을 사람 없겠어요. 아내가 말한다.
-그래요, 여기서는 앞날을 바라고, 한우의 종자를 가져다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요.
불확실하지만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기에 얼른 대답해준다.
그런 사이사이로 사탕수수 밭이 이어지는 곳도 빠져나오더니 메인 도로에 합류하여 신나게 달리던 차는 어제 갔던 곳에 도착하더니 내려준다.
차에서 내리며 끼리끼리 흩어져서 저마다 그런대로의 구경을 끝내고 통차와 약속한 저녁 5시 30분에 주차장에 모였다. 인원 점검을 하는데 나올 때 있었던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그는 이미 택시를 타고 귀선을 하였다는 것이다.
기관부의 A라는 이번 항차에 승선한 선원으로서, 저녁 4시부터 있는 자신의 당직시간을 대신하여 서주겠다는 동료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당직시간에 맞추기 위해 먼저 배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이다.
투철한 그의 책임 의식을 본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래도 편지 몇 통 부치고 그냥 되돌아 배로 들어간 그 친구의 행동을 보며 그의 이번 외출이 그렇게도 필요하고 그야말로 거금의 택시비를 투자하면서 까지 이뤄야 할 만큼 절박한 일이었을까를 되짚으며 좀은 씁쓸한 감정이 절로 든다.
택시요금이 적지 않은 액수라서 자신이 받았던 수당의 거의 전 금액을 다 택시요금으로 털어 넣었을 터인데, 아까운 생각도 들지만, 그에 앞서서 배에 남아있던 동료들 중에서 당직을 바꿔 서주는 정도의 편의를 봐주는 같은 직책의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야속한 것이다. 실제로는 당직을 바꿔줄 만한 사람도 있었는데 말이다.
승선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야박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게끔 선내 생활을 영위해온 A씨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여겨지는 내 짐작 역시 아쉽기만 하다.
A 씨가 부치겠다고 갖고 나온 편지는 우리나라의 가족에게로 보내는 게 아니라 외국(필리핀으로 기억됨)의 펜팔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런 점이 타 동료 선원들에게는 조금은 위화감이랄까 아니면 질시 비슷한 감정을 돋우어서 일종의 왕따 비슷한 기류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런 짐작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인화가 별로 없어 보이는 선내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같고 또 그런 사람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앞으로의 내 입장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아 머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