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치장의 필요성을 느껴본다
사무실 방에 있는 소파의 커버가 너무 낡기도 했지만 우중충하니 때도 많이 탄 것이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보기에 선장님 사무실로는 초라한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그런 광경이 맘에 안 들었든지, 다음번 집에 갔다 올 때엔 커튼용 천을 끊어 소파 커버를 만들어 주겠다고, 이번 동승을 위해 배로 올라오던 날 아내는 이야기했었다.
그랬던 아내가 오늘 낮 상륙 시 버스가 우리를 부려준 쇼핑몰 내를 아이쇼핑을 곁들여 돌아다니다가 어느 상점에서 50% 세일로 내 걸은 물건들을 구경하던 중, 테이블 크로스를 발견하더니 나더러 한쪽 끝을 펴서 들게 한 후 모양과 크기를 확인해본다.
-이런 건 사서 뭐하게?
조금은 의아한 생각으로 물었다.
-움직이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봐요.
아내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제 할 일만 한다.
우리 집에는 현재 식탁도 없는데 뭐하려고 식탁보를 구경한담? 하는 내 속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배 안 사무실 소파 커버로 맞음직 하다는 생각에 펼쳐 본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에는 들지만 크기가 좀 작다고 느꼈는지, 다른 물건을 더 고르다가 조금 더 커 보이는 같은 무늬를 가진 식탁보 두 개를 골라내더니 계산대를 향해 가잔다.
조개, 해마, 고기, 해파리, 게, 불가사리 등의 바다 생물이 프린팅 되어 있어 마치 수족관에 들어선 듯 한 느낌을 갖게 해 주는, 흑백으로 단출하게 표현된 문양이지만 눈에 확 띄어 튀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식탁보이다.
배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좀 더 쇼핑몰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약속한 시간이 되어 버스가 기다리기로 한 장소에 모두 모였다.
상륙했던 선원들은 간단한 패스트푸드를 들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배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작정하는 알뜰한 모습을 당연한 일로 여기며 통차 버스에 승차한다.
저녁 식사를 끝내자 아내는 평소 도와주던 설거지 하던 일도 미룬 채, 마음 바쁘게 방으로 올라가더니 즉시 식탁보를 꺼내어 열심히 소파 커버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와! 아방궁 같이 되었습니다.
마침 내방 사무실 앞을 지나가던 통신장이 감탄사를 내었단다.
아방궁이란 비유가 현실에 닿지 않는 표현이긴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 것으로 봐서, 그동안 내 사무실의 분위기가 너무 황량하게 보였구나! 짐작해본다.
그 조그마한 연출이 방 안의 분위기를 확 달라지게 만드는 걸 보니, 역시 꼼꼼하고 세심한 면이 많은 여자가 곁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아내는 더욱더 깔끔하게 내 방을 정돈하려고 했지만, 워낙에 내가 그렇게 깔끔한 성향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훨씬 깨끗해지고 규모 있게 정리 정돈하려고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뜨이니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그저 흐뭇할 뿐이다.
금 항차 동승 방선에서 아내는 여행 경비 중 호주 달러로 50불 정도를 내방 치장에 쓰일 물건 구입에 투자했는데, 돈들인 것 이상으로 분위기가 훨씬 두드러져 보이게 된 것 같다.
이번에도 방 앞을 지나가다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 기관장이 소파 커버는 집에 가져가지 말고 그냥 지금 같이 쓰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오늘 상륙 후 돌아오든 차 안에서 식탁보를 샀다는 말을 듣고 우리가 집에 가져가 식탁보로 쓰려고 하는 줄로 짐작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파 커버로 쓰려는 쓰임새로 산 것이니 모르긴 해도 내가 이 배를 완전히 내리게 되는 그 날까지도 깨끗하니 쓸모가 있는 상태로 남아 준다면 그때는 가져 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포항에 귀항하여 아내가 귀가할 때 가져가려던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기관장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기우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