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수와 제한 수심과 조고 차
안개로 시야가 막힌 모습. 짐을 싣는 일을 계획하다 보면 이렇게 앞이 꽉 막힌 것 같은 경우도 종종 만난다.
금항 헤이 포인트에 기항하여 선적한다는 예정으로 바뀌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본 참조사항은 예정 항이 바뀌는 경우의 다른 때나 마찬가지로 조석표였다.
바뀐 항구에 도착/출항할 무렵의 예상되는 고조시 조고가 화물 선적량을 좌우하는 키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금 항의 경우 그 조고 차가 아주 높고 좋아서 본선의 재화 중량톤 최대 수준이 되는 흘수로도 선적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실제로 나중 연락해온 대리점도 계약된 최대량을 선적할 수 있다는 알림을 주었고, 우리 배에서도 그에 따른 선적 예정량과 선적할 선창의 순서도 미리 알려 주었었다.
세상사 좋은 일이 있으면 그 반대되는 나쁜 일도 있음 이러니, 이런 최대량을 선적하기 위한 조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일이 슬그머니 나타나는 것이다. 아니 당연히 생겨있는 것이다.
고조시의 조고가 높은 만큼 저조 시의 조고도 그만큼 낮아지는 것. 그 점이 잠시나마 선적 흘수에 영향을 주게 되니 결국 저조 시에 선저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까지 어느 정도 흘수를 제한되게 화물을 실었다가 그 시간을 넘기어 다시 조고가 늘어나기 시작해서야 예정했던 최대량을 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출항 예정 23시간 전에 최대 흘수를 15.88미터라고 알려주더니, 같은 예정의 출항시간을 10시간 남은 때에 알려주는 것은 16.21미터라고 올려진 수치를 팩스로 통보해 온 것이다.
그런 사실을 가로 늦게 알려주고 있었기에, 콜 터미널(Coal Terminal) 당국이 선적량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사항에서 벗어나려는 고의성을 가지고 그런 게 아닌가 의구심부터 생겨났다.
무심히 팩스만 보면서 깊이 생각지 않은 채, 많은 양을 실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며 지나쳤다면 놓쳐버릴 수 있는 이면을 생각해 본 것이다.
출항 예정까지 10시간 남았다는 것은 저조 시 까지는 네 시간쯤, 그 후 출항 때까지 여섯 시간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실어야 할 2만여 톤의 남아있는 화물을 남은 그 시간 내에 선적 완료하려면 즉시 작업을 시작하여 최저 조 시간인 새벽 3시까지는 2만 여톤 남아있던 화물 중 저조에 합당한 양까지 최대로 실어주어서 다시 배가 부상하는 남은 시간에 실을 수 있는 나머지 화물량을 최소로 남겨 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시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들은 허용 흘수인 16.21미터까지의 화물 최대량을 실을 수 있다는 통보만 서류(팩스)로 해주고 작업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작업을 계속 저조 시까지 쉬며 시간을 넘기면, 새벽 3시부터 여섯 시간 안에 2만 톤을 실어야 하는 데, 이번 항차 이들의 작업 진행 속도로 봐서 도저히 예정량을 소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3시경 생길 제한 흘수 까지 실을 수 있는 화물은 우선 최대로 실어주어, 남은 양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 최선의 선적량 완수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된 것이다.
즉시 일항사에게 터미널에 연락을 취해 본선의 현재 흘수를 알려주고 출항 전 마지막 저조 시 조고에 알맞은 흘수까지 작업을 요청하도록 하며, 연락이 안 될 경우 그 내용을 서면으로 만들어 팩스로 꼭 보내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며, 그들이 보내온 팩스가 가진 이면의 뜻-자신들은 미리 정보를 주었다고 우길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16.21미터까지 선적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팩스를 보내어 참조하게 했지만, 본선에서 아무런 조처를 취하라는 요청이 없어 급한 작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만약에 본선이 예정 화물량을 다 못 실었다고 Deadfright 라도 청구하면 그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쓰려고 그런 팩스를 띄운 것일 거라는 예전에 당했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 준 것이다.
팩스를 우리한테 보내고도 사실상 작업은 하지 않고 있었음은, 실상 자신들의 화물 준비나 기계적 고장을 수리하는 등의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해 쉬고 있었던 것이다.
일항사가 연락하여 작업 재개를 하겠다는 언질은 받았지만, 아직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터미널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은근히 안달을 하던 중 드디어 LOADER가 슬금슬금 움직이어 4번 창으로 SPOUT를 들이밀고 석탄을 퍼붓기 시작한다.
아직 최대량의 선적에 대한 불안이 완전히 가셔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도의 마음이 생기니 아침 무렵의 출항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밤 열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잠이 퍼뜩 깨어 반사적으로 일어나 창밖을 살피니 아직도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열려 있는 선창마다 화물이 가득히 차있는 모습이 아니라고 느껴지어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발라스트 컨트롤 룸으로 내려갔다.
밤을 새우며 발라스트 배출과 선적작업을 감독하던 일항사가 피곤한 눈빛으로 나를 맞이한다. 지금껏 실려진 양과 남아있는 양을 이야기하며 선적 예정량은 실어질 것으로 여겨진다기에 일단은 안심한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엊저녁 힘들게 잠을 청하더니 이제야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잠깐이나마 나도 다시 누워 볼까 했으나 시간을 보니 새벽 다섯 시이다.
다시 잠들을 수 있는 때를 놓친 시간이라 그냥 침실을 나서며 헬멧과 작업화를 신고 갑판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도선사가 승선하고 예정된 출항이 수순을 밟아갈 무렵, 마지막까지 실어주던 SPOUT가 들리어 걷어지며 화물의 총량이 163,717톤이 실려진 것으로 계산이 나왔다.
그런대로 예정했던 양으로 채워지어 안도하는 마음은, 만약 엊저녁 그들의 팩스를 보고도 무심히 지나치고 빠른 선적을 독촉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5천에서 일만 톤의 화물은 덜 실었을 거라고 대략 계산해내며 흐뭇하니 변해간다.
순간의 판단이 아찔한 순간을 피하게 되었다는 뿌듯한 마음이 되니, 출항의 바쁜 시간도 좀 피곤한 몸도 잊어가며 출항 준비에 참여한다.
두 사람의 REEF PILOT가 승선하고 떠난 항해는, 하루 낮을 투자 하여 HYDROGRAPHER 수로(주*1)를 달린 후,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완전히 좁은 곳을 벗어나게 되었다.
마지막 리프(산호초) 등대의 환하게 번쩍이는 불빛을 등 뒤로 하고 빠져나온 하늘에 헬리콥터의 섬광 등이 더하여지더니 어느새 본선의 헬리포트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미리 갑판으로 내려가 본선 선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준비하고 있든 도선사들이 7번 창에 올라서더니 평형을 유지하며 앉아 있는 헬기에 오르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윽고 굉음을 내뿜어 양력을 키우더니, 그야말로 잠자리 같이 꼬리를 가볍게 흔들어 몸체를 하늘로 비스듬히 치솟아 주며 휑하니 그들의 기지를 향해 떠나간다.
주*1: HYDROGRAPHER 수로 GREAT BARRIER REEF(대보초) 내에 있는 항양선이 다닐 수 있는 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