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끊임없는 소음도 조용히 감수하는 즐거운 시간
저 아래 기관실에서부터 벽을 타고 층을 넘어서 끊임없이 내방에 까지 찾아와서 울려주는 단조롭지만 연속적인 기관의 조용한 동작 소리와 어울리게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한 번씩 숨을 쉬듯이 사르락 사르락 방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다. 잠시 눈의 피로를 풀려고 책 위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며 옆을 본다.
그곳에는 나보다도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있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 준다.
-배 타는 것도 큰 은총이야! 그렇죠?
책에서 눈을 들은 아내는 갑작스레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이냐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금세 나의 다음 말을 독촉하듯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눈초리를 보낸다.
-이것 봐요, 우리 부부가 이렇게 책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같이 앉아 있어 본 적이 예전에 있었어요?
-결혼 3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함께 독서하는 이 시간 같이 편하게 있은 적이 기억납니까?
-배를 탔기에 이런 좋은 시간을 오붓하니 갖게 되었으니 그게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아내는 나의 억지 같은 의견에 그냥 조용히 웃으며 동조해준다.
가만히 뒤돌아 보는 심정으로 지난 30여 년간 있었던 아내와의 인연을 돌이켜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조용히 보고 싶은 책을 보며 둘이 앉아 있는 정경은 너무나 흡족하고 마음에 드는 풍경이 아닌가?
단지 이미 노안으로 들어선 눈이기에 피로가 금방 찾아오곤 하여 눈살을 찌푸리며 책을 보게 되는 흠은 있지만, 승선한 후 벌써 네 권째의 책을 독파한 아내의 독서 열에 새삼 흐뭇한 문화적 만족감을 갖고 다시금 새롭게 쳐다 보이는 아내의 모습을 대견해할 뿐이다.
-이번에 집에 가면 한국의 유명 시를 망라한 시집이나 한 권 사줘요.
라고 말하는 듯한 아내의 눈을 쳐다보며 아직도 문학소녀 같은 마음을 가진 아내의 청으로 여겨 꽃다발 대신 기꺼이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옛시조와 어지간히 유명한 시는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아내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
예전에 한 번씩 시 이야기와 그 시구를 암송하며 보여주든 반짝이는 아내의 눈은 내 뇌리에 각인된 아내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바다 위를 달리는 배 안에서 이렇듯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화기애애하고 조용한 상태를 만끽하며 지나게 된 이번 동승 기간은 진짜로 신의 은총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시간 되어 우리 앞에서 이렇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