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의 물러남

물러난다고 믿으면 물러나는 것을.

by 전희태
Ȳõ2(8609)1.jpg 한번씩 파도를 갑판위로 쳐 올리는 종종 있는 황천.



아직도 폭풍경보(GALE WARNING)가 해제된 구역으로 완전히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가장자리에 접근하니 날씨가 점점 회복되어 해님도 보여주며, 파도의 꼭대기에 날리던 바람꽃도 많이 수그러지고 있다.


배가 파도에 의해 둔중한 움직임으로 흔들어 질 때마다 창 밖을 내다보며 갑판 위로 퍼 올려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의 맹위에 은근히 겁이라도 집어 먹은 듯,

-태풍이 불면 이것보다 더 나빠지는 거예요? 아내는 묻곤 하였다.


태풍과 폭풍의 같은 듯 다른 점을 어제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감은 잡았지만 아직도 막연히 태풍이 폭풍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앎의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왜? 겁이 나요? 하고 웃으며 묻는 나에게

-아니, 겁은 안 나지만.... 하고 우물쭈물 부정하는 대답을 하다가도,

-당신 하고 같이 있는데 무슨 겁이 나요, 설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이 같이 있으니 겁날 게 없잖아요?

라는 덧붙임으로 황천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려주곤 한다.


그런 아내에게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면서 내일이면 날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을 했기에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에 눈길부터 보냈는데, 정말로 날이 개이고 별빛이 초롱초롱하고 흰 파도의 모습도 많이 잦아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제의 기상 예측은 첫째는 기상도를 보고, 두 번째로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 날씨가 그렇게 되리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었는데 바로 그렇게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승선하고 있는 배에서는 날씨가 언제나 좋은 상황으로 바뀌게 될 것이란 굳은 믿음이 제일 크게 작용한 기분을 가지곤 하는 것이다.


어떤 배에 승선하더라도 그런 생각은 일종의 자신감이랄까 하여간 승선중 믿음이 되어 황천을 만나게 될 때마다 기승부리듯 비례하여 나타나 주곤하였다.


또한 결과가 그렇듯이 내 생각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면, 쇳덕(鐵德)을 공공연히 운위 하지만 결코 교만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승선 생활을 하는 영락없는 뱃사람이라고 자처하는 것이 맞기 때문일거다.


그런 믿음이 교만한 마음의 표출로 보이게 되면, 벌을 받게 될까 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곤 하는데, 하느님은 나의 이런 믿음을 어리석다 여기시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란 종교적인 믿음까지 가세되어, 내가 타는 배에서는 황천으로 인한 극도의 고생스러움이나 위험에 처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란 자신감을 가지며 지금껏 선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런 내 마음 가짐을 남들에게 열어 보이어 자랑으로 까지 이야기하면서 승선 생활을 해오고 있는데 그것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발로이면서 또한 자기 최면의 결과라고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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