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의 이가정성(離家庭性)
어제 오후 사선들의 미팅 시간에 나갔던 통신장이 사선 뉴 바로네스호가 호주를 출항하여 남위 11도선에서 북상 중이라는 뉴스를 전하기에, 아마도 죠마드를 통과하기 전쯤에서 올라오는 모양이니, 우리 배와는 오늘쯤 만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침 6시 40 분경 선수 오른쪽에서 나타나 지척으로 가깝게 지나쳐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노을에 빗기어 더욱 선명한 오렌지 색깔로 돋보이는 선체를 가진 두 배가 가까이 다가서며 인사를 보내고 대화를 나누느라고 두 배의 브리지는 한참 동안 부산한 아침이 되었다.
인사라는 게, 서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걸 주로 하다 보니 어느새 상대방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일들이 튀어나온다.
그 배의 이야기는 지금 집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기항하는 것이라며 원목을 싣기 위해 포트켐브라(PORT KEMBLA)에서 20여 일을 정박했다며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고 하소연을 한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꼴로 국내에 기항하며 적 양하 항구 양쪽 모두 하역 작업 기간이 너무나 빨라 3일 정도만 항구에 머물고 있다며, 그 배의 20 여일 씩 걸린다는 정박 기간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표시해본다.
국내 불기항을 6개월째 맞이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형편은 집에 못 가보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인데, 우리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갈 수 있다니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며 오히려 우리 배의 처지를 무진장하니 부럽다는 이야기로 되돌려 준다.
뱃사람의 가장 큰 약점이고 어려움이 바로 이가정성(離家庭性)이니 계속 떨어져 있는 가족을 그리는 일이 가장 큰 애로점이란 걸 인정할 때, 뉴 바로니스호의 선원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이 맞는 일이지, 우리가 오래 동안 항구에 머무르는 그것도 외국 항에서 맞이한 그 배의 상황을 부러워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두 배의 선원들이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염원은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라는 똑같은 점이니, 누구의 생각이 더 낫거나/나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꿈을 그리고 사는 우리 선원이란 직업인의 단순하고 천진난만함을 오히려 두둔해주고 싶을 뿐이다.
반년 만에 가족들과 만나게 될 희망에 부풀어서 요사이는 밤잠께나 설치는 게 틀림없을 그 배 뉴 바로니스호 선원들의 안전항해를 빌어주며 서로의 갈림길을 비껴 멀어지기 시작한다.
우리야 기껏 일주일 전에 만난 가족들이고, 또 한 달 안에 다시 만날 수 있는 형편이지만, 그 배는 6개월 이상 못 만났던 가족인데 아직도 일주일 정도 더 지나서야 만나게 된다는 데, 그 점조차 새삼 부러워지면서 그 배를 지나치고 있는 내 속은 욕심이 과한 것일까? 아니면 당연한 것일까?
내 손 안의 떡보다 상대 손에 든 떡이 더 커 보이는 사람의 마음이려니 하기에는 어딘가 억울한 듯 싶어 한 번해보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