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도착 48시간전

뱃사람들이 늘 그리워하는 그 순간, 집으로 가는 길

by 전희태
프로펠러와타.jpg 수리를 위해 Floating Dock에 오른 DWT.16만 톤 급 선박의 프로펠러와 타(舵)의 모습

대부분의 선원들은 국내항구에 기항할 때면, 잠깐이라도 집에 가 보거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려고 어찌해서라도 자신의 위치에 알맞은 시간으로 정박당직 시간을 서로 조정 해놓고 예정 도착 날짜와 시각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기다림은, 설령 도착한 며칠 안으로 연가 하선되어 배를 떠나게 될 예정이 있더라도(이번 항차 내 경우 같이) 결코 식지 않는 오히려 만남의 기쁨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형편조차 보이곤 한다.


-고정항 도착 48시간 전-

도착 예정 이틀 전 통보를 대리점에 해주었다.

8일 16시에 도선구에 도착되면 즉시 도선사가 승선하여 내항으로 들어가 묘박지에 투묘를 하면, 미리 수속을 끝낸 채 대기하고 있던 통선 보트에서 가족이 옮겨 방선 해오면 이번 고정 도착의 여정은 끝날 예정이다.

문제는 오늘 낮부터 약간씩 나빠지는 기상 상황이 그대로 되게끔 내버려 두려는 지에 예정의 완성이 달려있다.


그렇게 우리 도착과 함께 방선 하도록 준비하고 있을 가족들 중에 아내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기필코 예정대로 이뤄내야 하는 명제가 되어 나를 압박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경주 하지만 너무 빠듯해서 마음이 안 놓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리점에 문의하여 몇 시까지가 도선사의 승선이 가능한지 제한시간을 재차 물어보니 내일 오전 열한시에 다시 한 번 우리 배의 현실을 챙기며 알아보자고 한다. 일단은 그때로 미뤄 놓았지만 어긋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고정항 도착 24시간 전 -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낸 후 도착예정 전보를 날린다.

아침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는 이미 내일 오전 9시대에 있는 장항선 열차표를 예매하여 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꼭 마중을 나와서 만나야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선속은 그런대로 13.5노트를 유지하고 있어 도착예정시간이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져 다행스런 마음이다. 그러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입장이고 한눈을 팔 여가가 없는데도, 자꾸만 앞에 나타나는 작은 어선들 때문에 타를 틀어줘야 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선속이 좀 떨어지게 되는 일이 잦아지니(주*1) 절로 애간장이 다 녹아들고 있다.

허나 이렇게 선박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은 연안 항행구역에 들어섰다는 뜻이니 당직에 유의하여 사고방지를 미연에 해야 한다는 사항에 맞춘, 나의 브리지 근무 시간은 자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 드디어 도선구에 도착 -


군산 앞바다에 접근하며 본 텔레비전 뉴스에서 서울 예지동 금은방 골목에 화재가 발생, 한 시간 이상 계속 되었는데, KBS는 3천만 원, MBC는 수억 원의 피해를 내었다는 보도를 한다. 몇 년 전 그곳 골목에 전통 매듭 가게를 내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온 지인과 아내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만약 그때 어렵사리 그런 일에 뛰어 들었더라면 오늘 뉴스로 나온 금은방 화재에 그냥 텔레비전의 화면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퍼뜩 들면서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뉴스가 끝난 후 브리지에 올라가 보니 열심히 달리는 표시로 느끼고 있던 배의 역동적인 진동은 최강으로 흐르는 역 조류에 의한 고전을 의미하고 있는 거다. 가족과 상봉할 예정이 선원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짜증스런 정월 초하루(설날)가 될 것인가? 10시가 되어도 좀처럼 속력의 정상화가 나오질 않아, 나중 순조로 회복 되어도 너무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여력이 모자라는 연착도 다분히 예상되는 것이다.


마침 기관장도 부산을 떠나 대천(고정항)을 향하고 있는 부인을 생각하니, 우리 배의 기관 담당 최고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속력 안 나가는 현실이 속 태우는 모양이다.

“선장님, 전화 걸렸어요.” 짐짓 초조한 마음도 들었겠지, 자신의 휴대폰이 없는 사람인데 전화를 걸어 놓은 웬 휴대폰을 나에게 건네주며 말을 건다.


보아하니 2기사가 갖고 다니는 전화기를 빌려 우리 집사람의 휴대폰에 연결시킨 것을 들고 브리지를 찾아 온 기관장이 말한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연결시켜 들이댄 전화기라, 엉겁결에 받아들며 “여보세요” 하고 불렀는데 의외로 깨끗한 음질의 아내의 응답이 들린다.


아내는 지금 한창 달리고 있는 장항선 새마을 열차 안에서 받는 전화란다. 나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배 안에서 연결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양쪽 모두 씽씽 움직이고 있는 교통수단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거다. 세상은 참으로 편한 세월을 맞고 있구나! 감회에 빠져들며 도착 시간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말 밖에 못했다.

점심을 먹고 (설빔을 들고) 다시 브리지에 올라가 속력을 보니 15.2 노트까지 올라가 있기는 한데 앞바람이 약간 일고 있어 아직도 걱정거리를 다 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이대로 유지해준다면 16시30분을 꽉 채울 것 같으니 더 이상 바람이 불지 말아 주었으면 바랄 뿐이다. 다시 전화를 걸어 무사히 대천역 OO장 호텔 앞에 도착한 아내를 확인 하였다.


거기서 통차를 타고 대천 어항으로 온 후, 다시 통선으로 바꿔 타야 배 옆으로 오게 되는, 참으로 바쁘고 험난한 가족 만남의 육,해상 길은 여태 남아있다.


1530시 드디어 도선사와 연락이 닿았다. 본선이 30분 늦게 도착함을 알려주고 1645시경 승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입항 항로 앞으로 진입하겠다고 알려 주었다. 물론, 항해의 커다란 장애물인 안강망 어망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1600시 아내에게 전화를 거니 이미 통선장에 와 있고 다른 가족 분들도 여럿 기다린다며 통선은 18시에 우리 배로 향해 떠날 것이라 한다.


1800시 투묘를 끝내고 나니 이미 묘박지 부근에 미리 나와서 대기해있던 통선에서 가족들이 한사람 씩 본선으로 옮겨온다. 1997년 구정 초하룻날의-설날- 가족 상봉은 이렇게 숱한 과정을 거쳐 배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사흘을 배 안에서 더 지낸 후 연가로 하선 귀가 드디어 연가에 들어서다. 배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어제 배로 불러 내린 둘째를 앞세워 짐 보따리를 들게 하여 대천 역에 도착하다.

오후 2시15분 대천발의 통일호 열차 특실에 오르니 72명 타는 객실을 56명이 타도록 고쳐진 것 빼고는 일반실과 모두가 똑 같은 재질의 객실이다. 마침 좌석이 3번과 4번에 8번으로 바로 문을 들어서면 양편에 있는 좌석이지만 그 문이 바로 기관차와 연결된 1호차 이므로 그 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곳이니 바로 좌석과 출입문 벽이 있는 벽면과의 사이에 넓은 공간이 있어 짐을 가져다 쌓아 놓으니 자리도 넓어 아주 편하다. 검표하는 열차승무원이 힐끔거리며 우리 짐이 쌓여있는 모양을 쳐다보는 걸 보니 과연 짐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어쨌거나 성인 남자가 일 년간 살면서 쓰던 이사 짐인데 그 정도도 없을 수야 없지. 거기다가 모처럼 집에 가는데 선물 또한 있을 터이니 그 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하는 의미의 눈길로 그 승무원을 쳐다봤다


주*1: 항해 중 선미 물속에 잠겨있는 이렇게 큰 Rudder(타, 키)를 돌려서 배의 선수를 좌우로 틀어주게 할 때, 타면에 미치는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배의 속력이 절로 감소되므로 잦은 타의 사용(다른 배와 피하기 위할 때 등)은 선속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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