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투묘 후 기관 수리

배에서 만나는 뜻밖의 위급상황

by 전희태

새벽 6시의 도착을 맞추기 위해 빠른 속력을 감속시켰다.

구돌서 등대 부근에 4시에 도착하면서 알리라고 지시한 선장의 야간 지시록 대로 그 위치를 그 시간에 도착한 일항사가 지시대로 하고 있음을 전화로 보고해 왔다. 앞쪽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난 것 같은 모습이 레이더 스코프 상에 보인다. 즉시 속력을 미속으로 줄이도록 명령했다.


줄어드는 속력과 함께 갑자기 기관이 소음을 발생시키며 먹구름 같은 연기를 쏟아내더니 '꽝' 하는 녹킹 소리까지 낸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아 기관실로 연락을 취하며 스피드도 점점 줄여 가는데 기관실에서 연락이 온다.


“선장님 엔진 테스트를 해 봐야겠는데요.”

묘박지를 향해 기관은 정지하고 타력으로 가고 있던 중이니 후진 미속으로 테스트에 응한다. 잘 걸리는 걸 보고 안심하고 그냥 전진하다가 진짜 필요한 위치에 도착하여 다시 미속 후진을 명했다.  텔레그라프의 응답은 떨어졌는데 기관의 소리가 심상치 않게 나며 굴뚝의 연기도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양이 쏟아지듯 흩뿌려져 뒤 하늘을 꺼멓게 만들어 준다.


즉시 엔진을 정지시켜준다. 기관실에서 연락이 오며 더 이상 기관사용이 불가능하니 그대로 타력만을 이용하여 투묘를 해 달란다.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긴급 상황인 기관고장이 발생한 것이다.

아직 전진 타력이 4 knots 나 되고 13만여 톤의 화물까지 싣고 있는 타력이니 그 힘을 그리 만만하게 볼 상황이 아니기에 걱정부터 앞서지만 어쩌겠는가? 타를 최대 각도로 전타해 가며 타력을 줄이는 방안만이 유일한 감속 방법이라 선택해 보나 그 영향이 있는 둥 마는 둥한 것 같아 속이 탄다.


좀 더 전진하여 이제 예정했던 투묘지에 접근됐으나 속력 게시반에는 아직도 3 knots에 눈금이 들어 있다. 비상사태에 대비키 위해 준비하고 있던 좌현 묘에 더하여 우현 묘까지 스탠바이 시켰다.

양현 묘 준비가 끝나자마자 즉시 좌현 묘를 투하하여 2 shots(*1)에서 holding 시켜 닻을 끌면서 속력을 줄이도록 해준다.

전진 속력이 2 knots로 줄고 원래의 투묘 예정지에 그려줬던 원의 둘레에 닿을 무렵 <렛고 스타보드 앵카!> 명령으로 우현 묘 마저 투하했다. 우현 체인을 계속 신출시켜 6 shots가 되었을 때 완전히 잠가주어 전진 타력을 죽이고 닻이 해저에 꽉 박히도록 조처하였다.


그렇게 우현 묘가 해저에 고정된 후 좌현 묘는 다시 감아 들이어 제자리(체인은 체인 로커로, 앵카-닻-는 호스 파이프 내에 고정)로 수납시키고 선수 인원을 해산시켰다. 

DSCF0346.jpg 1977년, 인도네시아로 남양원목을 실으던 다니던 때 승선했던 목천호의 투묘 중 모습

결과적으로 평소 별로 하지 않는 비상 투묘 훈련을 실제에 입각하여 멋지게 해낸 셈이다.

무사히 도착하였으나 주기관은 피스톤을 바꿔야 할 사고가 난 것으로 판명되어 대여섯 시간을 소비해야 고칠 수 있단다. 다행인 것은 오늘 오후 16시 만조 때에 접안할 예정이므로 그 안에 수리만 끝나면 구태여 본선의 기관 고장이 레이 데이(Layday, 정박(선적) 기간)의 중단(*2)을 가져오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착한 후 수속하러 올라온 대리점원의 첫 일성 역시 <오늘 접안 못하고 내일 합니다.>이다. 이것 역시 타임 로스 없이 기관 수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더해 주는 셈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만을 생각하면 약 오르는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하루 더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부하며 허어 웃고 만다.

투묘 작업이 해산되고 연이어 기관 수리가 시작됐다. 기관장의 지휘 아래 본선 선원들은 장장 일곱 시간이 걸린 수리 작업을 안전하게 끝내고 시운전까지 하여 명일의 접안에 차질 없는 대비를 마쳤다.


주(*1) Shot :절, Shackle이라고도 하며 닻줄의 길이를 재는 단위. 통상 25~27.5미터 정도이며, 닻(Anchor)은 배를 일정 장소에 묶어두는 역할을 위해 사용하지만, 급하게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속을 낮추려고 할 때에도 사용한다. 따라서 2 Shots 정도 신출시킨 후 잠그면 해저에 닿은 닻과 50여 미터의 닻줄이 함께 해저에 끌리면서 선속을 감속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주(*2) : 선박이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여 하역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용선주 측에 알려 확인받으면서 Layday는 시작되지만 선박의 자체 결함이나 선주(선원 포함) 잘못으로 계속 용선에 지장 받게 될 경우, 그 시간은 Layday에서 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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