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꿈일까? 개꿈일까?

야간 항해 중 휴게실에서는

by 전희태


090404사관휴게실 035.jpg 게임이 이루어지는 휴게실


저녁 식사 후의 휴식시간이다. 트럼프 카드로 벌이는 훌라 게임 판이 있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기분 좋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이! 땡큐 써!

앞사람이 버린 카드를 날름 집어 들어서 자신의 카드와 함께 벌려 놓으며 신이 난 K군이 내뱉은 한 마디이다.


-아이 참! 내 정신이 어디 갔던 거야?

K군의 패를 완성하게 만들어 준 앞사람이 자신의 실수를 한탄하며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한 목소리를 낸다.

-우째 그런 일이, 좀 잘 내지 않고 뭐했시요?

남이 잘못 낸 카드 때문에 같이 바가지를 쓰게 된 동료들이 좀은 짜증을 가미시키며 구시렁거리는데,


-허어! 그 꿈이 이런 뜻이었나?

K 군 목소리가 다시 나온다.

-뭐? 무슨 꿈을 꾸었는데?

같이 앉아 카드게임을 하던 여덟 개의 눈들이 이제는 꿈 이야기를 흘러 내는 K군을 쳐다보며 어서 다음 이야기를 독촉하는 눈빛들이다.

-아 글쎄 돼지란 놈이 30 마리나 꼬리를 물고 나타나지 뭡니까?

-와 그럼 돼지꿈을 꿨다고?

좀은 부러운 듯한 목소리로 누군가 거드는 데,

-그렇긴 했는데요, 마지막 돼지가 들어서는 걸 보니 글쎄 그 꼬리를 개새끼가 물고 들어오지 않아요.

-와아~ 그럼 그거 돼지꿈이 아니고, 개 꿈이잖아?

-돼지 30 마리라면 적은 숫자가 아닌데, 마지막은 개가 따라 들어왔다고......

-그거 떼돈을 벌 뻔한 꿈인 거 아니야?

-떼 돈은 무슨 떼 돈, 돼지와 개꿈이 구만.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K군이 완성한 커다란 패 때문에 제법 되는 푼돈을 내놓게 된 상황인데도 모두 키득거리며 웃고 있다.


신이난 K군은 입으로는 연신 꿈 이야기를 흘리면서도, 손으로는 잽싸게 칩으로 쓰고 있는 바둑돌을 모두 걷어 들이며 어느새 카드를 섞어 다음 게임의 카드 돌리기를 준비하고 있다.

-근데, 그런 꿈을 언제 꾼 거야?

-방금 꾼 건데요.

시치미를 뚝 뗀 K군이 응수한다.

-뭐라고? 방금 꾸었다고?

-에라이 썅, 깜빡 속았잖아!

-그럼요, 모두들 잃었다고 기분 나빠하는데 우스개 소리 한번 했죠.

그래도 돼지꿈으로 왕창 따지 않고 개꿈으로 만들어 그 정도이니, 너무 심란해하지 말라는 K의 너스레에 모두들 다시 한번 더 웃어준다. 게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나도 돼지꿈을 꿔야 하는 거 아니야?

K의 재치에 마음이 풀어진 분위기 속에 누군가 잃은 판돈을 어림잡아보며 중얼거릴 무렵, 선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지금 선수 쪽으로 난 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으니, 커튼을 걷어 놓은 분은 즉시 방의 커튼을 다시 쳐 주세요!

-다시 한번 알립니다. 지금 시각, 선수 쪽으로 난 창의 커튼을 열어두고 계신 분들은 얼른 커튼을 쳐 주세요!

브리지 당직사관이 항해 중 경계(주*1)에 방해가 되는 불빛 단속을 위해서 창문의 커튼을 치도록 요청하는 방송이다.

-내방 커튼을 걷어 놓고 내려온 것 같기도 한데....

혹시 게임 멤버가 될까 하고 내려왔다가 자리가 이미 차서 할 수 없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H가 중얼거리며 일어나려는데,

-어이, H 씨! 올라간 김에 내 방 커튼도 좀 봐줘요. 대신 내가 밑천을 대 줄 테니 내려와서 하세요.

K가 자신의 방도 봐줄 것을 요청하며 선심의 발언을 한다.


어둠으로 사방이 차단된 바다 가운데를 조용히 달리고 있는 배안이다. 분주했던 낮시간을 보낸 선원들이 한 번씩 왁자지껄하는 웃음소리도 내며 휴식을 즐기는 이 순간들, 어쩌면 배에서는 하루 중 제일 조용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주*1 경계 : 예전엔 견시(見視)라는 일본식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는 데, 배에서 항해 중 선수 쪽을 주로 하여 육안으로 타선박이나 섬 등의 항해에 방해되는 물체나 구조물 등을 미리 찾아보는 당직 상태를 말함.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쌍안경도 사용하고 레이더 등 전자설비도 이용하고 있지만, 브리지에 처음 배치되어 근무하게 되는 선원들에게는 맨 처음 지시되는 맨눈으로 보는 당직이기도 하다.


항해 중인 배가 망망대해의 어둠 속에서 타 항행선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을 환하게 밝힌 불빛 속에서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법(국제 해상 충돌 예방법)으로 규정한 등불만을 켜 놓은 상태를 상대에게 보이고, 또 그런 상태인 상대를 찾아야 하므로, 항시 어둠 속에서 경계를 해야 한다. 따라서 법으로 정한 항해나 정박을 알리는 법정 등불 이외의 불빛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어둠-야간-속 항해에서는 항상 주의가 요망된다.


항해등이란 선박이 야간이나 안개가 낀 곳을 항행할 때 그 존재 및 진로방향을 표시하기 위해 점등해주는 마스트 등(장등: 전부, 후부 각각 한 개씩의 백 등)과 현등(좌현 적색 등, 우현 녹색 등) 그리고 선미등(백 등 한 개)을 말한다. 각 등을 조합해서 보면 선박 상호 간의 위치 및 진행방향을 알아볼 수 있게 설비,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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