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했다가 그냥 내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2개월 10 여일을 연가로 쉬고, 책임 선장으로 되어 있는 배를 다시 찾아와, 어제 교대를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그동안 하선해 있던 기간에 수신한 서류를 찾아 읽어보고, 또 새로이 와 있는 서류까지 뒤적여 보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좀 한가한 마음으로 선내 사무실을 찾아들었는데,
-선장님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고 들여야겠습니다.
금항 본선에 교대 승선한 기관장이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마침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2 기사가 하선하겠다네요.
이번 항차는 선원들의 교대가 제법 많은 항차여서 새로이 승선한 사람이 몇 사람 되는데 그중에 새로 탄 2 기사는 좀 전 저녁 식사를 하기 직전에도 눈인사를 하며 지나쳤고, 자신의 방으로 가는 걸 보았었다.
그런데 기관장의 이야기는 바로 그 2 기사가 보따리도 제대로 풀지 않았던 승선 하루만에 우리 배를 타지 못하겠다는, 강력한 하선의사를 표하고 있어 그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단다.
지금까지 승선 중에 이런 경우를 당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또 한 번 내가 타는 배를 기피하려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참으로 기분 나뿐 경우를 만난다는 거부감이 순간적인 미움과 짜증되어 함께 밀려들었다.
그 친구의 의도야 어떠하든, 그 바람의 결과는 결국 나와 한 배에 승선하기를 꺼린다는 의미요, 나를 배척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니…. 세상에 자기를 싫어한다는데 좋다고 할 사람도 없는 것, 괘씸하고 얄밉기도 한 감정을 또한 사람에게 향하여 품게 될 형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하여간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어딘가 자신의 맘에 들지않는 점이 많아서 본선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 셈인 그 심보야 밉지만, 그래도 일의 진행상 확인할 일들이 있으니 당사자인 2 기사를 즉시 불러오라고 지시한다.
방으로 들어서는 그 친구를 불편한 심기로 노려보며 배를 타기 싫으면 처음부터 이 배에 오지를 말지 왜 찾아와서 본선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느냐는 힐난의 말투로 시작하고픈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본선 승선을 제대로 하지않고 떠나려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참을성을 가지고 차분하게 묻는 내 말에 별다른 이유도 대지 않고 무조건 떠나겠다는 대답만 하는 괘씸한 그로부터 더 이상의 말은 듣지 못하여 결국 내 보낸 후, 즉시 회사의 인력관리실에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한 후, 회사가 그 친구를 회유하여 다시 본선에 태우려는 방법만큼은 사절한다는 뜻을 밝히며, 어찌하던 출항 전까지 인원 보충을 해결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어느 배로 가라는 승선 명령에 싫은 마음이 들었지만, 회사의 요청과 회유에 굴복하여 할 수없이 승선해왔던 지금까지의 많은 선원들의 경우를 보아 왔지면, 대부분 그 끝이 별로 탐탁지 않은 결과를 보이곤 했다.
따라서 내 마음속에는 이미 오기 싫은 사람이나,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나 대로의 선원 인사 철칙을 세워서 생활해왔기에 이번에도 그의 하선을 기정사실화 하며 회사에 보고하고 요청한 것이다.
거기에 내 마음에 와 박힌, 그 안하무인 격의 태도가 미웠고, 사회인으로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책임 회피의 행동도 역겨워서, 비슷한 부류의 제삼자에게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으로 <사실의 전말> 서류를 작성해 회사로 보내며 후속조치 결과도 알려 주도록 청하였던 것이다.
-전략-
자신의 순간적인기분에 따라 모든 일을 결정하여, 타인이나 회사에 누를 끼치는 일을 태연히 행한 2 기사 U S H에 대하여 본선은 그 의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끝까지 하여, 앞으로 그의 승선생활 태도에 좋은, 그러나 쓴 약이 되었으면 바랍니다. 아울러 그에 대해 취하신 회사의 결정과 일의 결말을 사후 통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의 전말 보고서> 마지막 부분이다.
회사는 출항 직전까지 다른 2 기사를 구하려 애를 썼지만, 실패하였고, 연가로 하선하려던 전임 2 기사를 다시 한 항차 더 계승시키는 걸로 결말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그 후 자신의 억지로 하선한 이 기사에 대한 후속의 이야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본선에 통보해주지 않고 넘어갔다.
어쩌면 회사가 자신의 하부 부서인 본선으로 본선 선원 인사에 대한 사후 사항을 시시콜콜히 알려주는 전통을 만드는 것이 가당치도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회사와 본선이 상호 긴밀한 유대감을 갖고 선원 인사에 대한 결말에 대해 회사, 본선 , 선원 당사자가 똑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여야만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선원으로 인해 본선이 받게 되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책임감 없이 승선에 응했다가 또 자신만의 기분이나 이익에 따라 함부로 하선하는 등의 일을 너무나 쉽게 행하여 회사나 본선에 피해를 주게 되는 철새 같은 생각을 지닌 선원을 우리 해운 계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방법이 그런 유대관계의 유지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선원이라지만 결코 같은 선원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동하는 선원들 때문에 본선에서 속을 끓이며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한바탕 본선을 휘젓고 떠나는 것 같은 선원 아닌 선원이라면 다시는 어느 배로라도 돌아와 주지 않기를 바라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런 선원은 우리 선원 계에서 그냥 퇴출되어 주었으면 바랄 뿐이며, 어느 해운회사에서도 그런 작태를 부린 선원은 두 번 다시 고용되지 못했다는 결과를 후일담으로 꼭 듣고 싶은 게 나의 정직한 심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