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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수리를 낚시질로

사운딩 파이프 내부에 떨어진 측심추를 낚시질로 건져내다

by 전희태


090412 031.jpg 크로스데크 상에서 볼 수 있는 홀드 빌지 사운딩 코크


배에서는 여러 가지의 액체를 실을 수 있는 탱크가 준비되어 있다. 액체 화물(원유, 각종 화학제품, 동, 식, 광물 유등)을 싣는 탱크나, 연료유와 청수를 싣는 탱크가 있고 그 외에 배의 밸런스를 잡기 위한 각종 발라스트 탱크가 있다.


당연히 이런 모든 탱크에 실린 액체의 양이나 선창의 빌지 박스에 스며든 액체 등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측심 장치가 각각의 장소에 설비되어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갑판에서부터 탱크의 바닥까지 이어진 사운딩 파이프를 통해 줄자를 넣어 들어있는 액체의 탱크 바닥에서부터의 깊이를 측정하여 그 양을 계산해 내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우리 배는 액체 화물을 싣는 배는 아니므로, 발라스트 탱크와 연료유 탱크 그리고 청수 탱크와 각 선창에 측심(測深)을 위한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약 4개월쯤 전에 누군가 5번 F.O(연료유) TANK를 측심(SOUNDING)하다가 측심용 자가 끊어진 것을 제대로 보고를 안 하고 그대로 놔둔 채 측심을 시행했던 당직자가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 그 상황을 알았을 때는 이미 끊어진 토막 자로 인해 꽉 막힌 SOUNDINGPIPE 내부로 측심이 불가능 해지면서 알게 되었고 결국 그 기름 탱크에는 당분간 기름을 받지 않고 비워둔 채 있었단다.


연료유의 보급량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수급 유량이 많아져야 할, 좀 더 장거리 운항을 하게 되는 때에는 그 탱크에도 기름을 채워야 하므로 그런 일이 생길까 봐 은근히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저녁 식사가 끝난 후 그런 상황을 이야기를 하며 기관장은 그 탱크의 맨홀이 있는 관계된 화물창에 들어가서 맨홀 뚜껑을 열고, 탱크로 진입하여 SOUNDING PIPE의 아래 부분을 잘라낸 후, 그 안에 남겨져 있는 잃어버렸던 측심추를 회수하여야겠다는 작업 실시를 논의해 왔다.


<잃어버린 측심추의 회수>라는 사실 별일 아닐 것 같은 원 작업의 시행을 하려면, 부대의 보조작업인 상기 열거한 작업이 협소 공간에서의 작업, 유해 폭발 가스가 있는 위험한 장소에서의 작업, 같은 조심해야 할 대목이 많기 때문에 그리 호락호락하니 쉽게 넘길 일이 아니기에, 식사 후의 즐기던 담소도 젖혀주며 작업방법에 대한 열띈 토론이 벌어졌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낸 결론은 맨홀을 열고 탱크에 진입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우선은 일항사가 제안한 낚시걸이 방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사운딩 파이프 내부로 미끼 없이 낚시질할 때와 똑 같이 낚시 줄을 넣어주어, 끊어져 파이프 내부를 막고 있는 줄자에 걸어서 낚아 올리는 작업으로 숙달된 낚시꾼의 감각이 오히려 필요한 일이다.


성공만 한다면 관련된 부위의 철판이나 파이프를 용접기로 뜯거나 잘라내는 번거로움이 없이도 깨끗하게 수습이 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다.


모임을 해산할 즈음. 만약 그 방법이 성공하여 탱크를 개방하지도 않고 작업이 해결된다면, 맥주 두 박스를 그 일을 성공시킨 사람에게 상품으로 내건다는 약속을 기관장이 하였다.


새 아침이 되었다. 과업 정렬 시간에 이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실패할 경우 갑판부에서 탱크를 개방하는 등의 귀찮은 일을 해야 하니 기필코 성공하도록 하라고 격려하며, 배에서 낚시질을 제일 잘하는 갑판수에게 놀이 같은 그 일을 전담하도록 했다.


작업 지시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항사가 웃는 얼굴로 나타나서는 작업이 성공리에 끝났다는 기분 좋은 보고를 하며 건져 올린 측심자의 추를 보여준다.


-아니, 너무 쉽게 결말이 나니까 맥주 두 박스를 상품으로 내려던 사람 마음 변할지도 모르겠네.

하는 심정이 들 정도였다.


하나 약속은 약속. 맥주 두 박스 내기를 아까워하는 태도라도 보인다면 나라도 대신 내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빨리 결과를 기관장에게 알리어 같이 기뻐하고 싶은 조바심에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점심을 들며 성공한 이야기를 하니,


-아, 정말로 잘되었군요.

-저녁때 맥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더니 이어서,

-역시 이런 것은 광고를 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게 좋은 방법도 나오고 그러는군요.

하며 기관장은 오히려 나에게 같이 수긍해 주는 마음을 구해온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옛말에 <병은 많은 사람에게 광고하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이 일도 기관장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했기에 쉽고 좋은 방법이 나와 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워낙에 일을 벌여 끝장을 보려고 작정했던 때문일까? 기관장은 꺼내진 줄자의 파편도 확인하며 큰 작업을 안 해도 좋게끔 일이 쉽게 끝나게 된 것을 기뻐하며, 맥주 내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내어야 할 것으로 치부하며 신경도 안 쓰고 기뻐하고 있다.


나 혼자 지레짐작으로 혹시나 마음이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잠깐 남을 의심한 셈이 된 것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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