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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서 느끼는 아주 편안한 소리

시끄러운 기관의 소리가 자장가보다도 더 안심을 준다.

by 전희태
Ȳõ3(7998)1.jpg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모습.


GLADSTONE을 EXTRA CALLING으로 기항하여 짐을 싣는 일은 확정되었지만, ETA를 예정한 날짜에 제대로 못 맞추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내일 오후면 도착할 것이란 예상을 가지고 달려왔건만, 계속되는 앞바람과 파도로 인해 예상보다 2 놋트 이상 속력이 떨어진 상태가 사흘 이상 계속되어, 늘어나게 된 시간의 합이 만 하루의 늦어짐을 발생시켜, 일찌감치 통보해 주고 있던 호주 무선 검역 신청서를 다시 작성하여 보내야 했다.


그 신청서는 적어도 도착 24시간에서 36시간 이전에 보내야 되는 거라 처음 그에 맞춰 보낸 것이 속력이 늦어져 하루가 지연된 만큼 36시간 전 발송을 지켜내지 못하게 된 것이라 취해야 할 조치였다.


해는 보이지 않고 구름에 잔뜩 가려진 회색 빛 하늘만이, 희뿌옇게 반투명한 안개를 동무 삼은 수평선을 가운데로 내 세워서 바다와 한계를 짓고 있다.


그 사이를 넘나들며 바람꽃을 피워내어 톱날을 세워주는 파도의 희뿌연 이빨을 들어 내 보이는 모습이 선창 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들리는 소리라곤 바람이 한 번씩 몰고 지나치며 내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휘잉 거리는 휘파람 소리요, 파도가 뱃전을 때리며 생기는 먼데서 울려 퍼지는 대포 소리 같은 굉음,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서 수시로 시달림 받으며 내지르는 신음 마냥 선체 각 곳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삐거덕 거리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배의 흔들림을 반추하는 합창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선외로 통하는 모든 문을 황천에 대비하여 닫아 둔 상태라서 안에서는 이들 소리가 그리 크게 들리지는 않고, 선박 자체가 움직이기 위해 내는 기계음 소리가 오히려 더 크게 들린다.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인 청각 기능이란 단서를 붙여서, 음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떤 것이 자는 잠을 덜 깨울 수 있는 환경일까? 를 조사한다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은 단연 후자인 조용함을 택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배의 운항에 참여가 깊은 선원들의 입장은 단연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목적을 두고 있는 곳을 향하기 위해 기관을 운전하여 항해를 할 때, 일정하게 들려오는 기관(기계) 음은 절대로 귀에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는 안심을 주는 소리이다.


쉬지 않고 열심히 프로펠러를 돌아가게 하는 주기관과 온 배에 전기를 보내주는 발전기 등이 만들어 내고 있는 그 소리는 바로 그-우리 배-가 역동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증거로서 마치 사람의 몸안에서 쉼 없이 뛰고 있는 심장이 내는 맥박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걸 우리는 죽음의 상태에 들어간 비상 상황으로 알아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제 이들 소리의 합창은 항해 중인 배 안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비록 소음 수준일지라도 편안한 마음을 이끌어 내며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보면 되는 거다.


따라서 이 소리가 갑자기 끊어지면, 실제로는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자취를 감추며, 일순간에 산사의 경내에라도 들어선 것 같은 조용함 속으로 빠져들겠지만, 우리들의 감각은 그것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런 때가 혹시 깊은 수면 중에 들어 있는 때라면 더욱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게 만드는 조용함일 거라는 생각은 그냥 모르는 사람들의 지레짐작일 뿐이고, 실제로는 지금까지 당연히 있어야 하는 소리가 없어진 불균형으로 인해 저절로 잠에서 깨는 경험을 만들게 한다.


조용함=기계의 고장이나 정지이고, 시끄러움=원활한 기계 작동이니 이런 공식이 저절로 몸에 배어 있는 생활안에서 어쩌면 위험한 상태일 수 있는 바다 위의 기관 고장이 주는 조용함 보다는 살아 있는 기계음이 주는 시끄러운 안정이 더욱 마음 편한 소리인 것이다.


항해나 정박 모든 상황에서 하루 24시간 계속 소리를 내가며 움직여야 하는 게 박용 기관의 운명이다. 우리 배도 그런 사실을 정확히 알고 그 점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 열심히 소리 내어 살아있음을 표시하고, 나도 그런 상황을 믿음직스럽게 감각해내어 깊은 잠도 자고 편안한 휴식도 취하며 일상생활에 침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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