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F를 통한 교신에서 지켜야 할 예의
10시 30분경. 아직은 3항사 당직이 한창인 오전 시간이다.
브리지에 올라 차를 한잔 마시는데 새벽에 우리 뒤쪽 15 마일 정도에서 쫓아오던, 빠른 모양새로 보아선 컨테이너 선박인 것 같다고 1항사와 이야기 했던, 바로 그 배가 이미 뒤쪽 3 마일 정도로 더욱 접근해오고 있다.
쌍안경을 들어 자세히 지켜보던 3항사가 “H해운의 배 입니다.” 보고 한다.
“컨테이너선이지?” 되묻는 나에게 “예, 맞습니다.” 삼항사가 대답했다.
그 배가 그렇게 우리와 가까이 접근하며 약 2마일 정도로 간격을 갖고 추월 할 무렵,
“P상선 선박! 감도 있습니까?” VHF의 CH. 16번 전화가 스피커로 울려 나온다.
“삼항사 나가봐라.” 나를 의식해서 머뭇거리는 3항사에게 응답해주라고 지시를 했다.
“H해운 선박, 여기는 P상선 OOOOO호입니다. CH. 08로 나오세요.” 대답해 준다.
잠시 후 08 찬넬에서 약간은 들뜬 듯 한 목소리가 “P상선 선박, 여기는 H해운 선박입니다.” 하더니
“삼항사입니까?” 재차 물어 온다. 자신의 선명도 밝히지 않은 채 급히 말을 걸어오는데 마침 우리 배의 삼항사는 여자 사관이다. “예, OOOOO호 삼항사 입니다.“ 나긋나긋한 본선 삼항사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H씨애틀호 삼항사입니다, 실례지만 목포해대 나오셨습니까?”
빨리 이야기를 진행 시키려고 일방적인 그런 식으로 물어오는 것 같다.
삼항사는 그냥 ‘해대를 졸업 했어요.’ 하는 식으로 대답해도 될 터인데, “아니요, 한국 해양대학을 나왔습니다.” 또박또박 대답해 주는 만큼 그 녀의 언성에는 매우 불쾌한 심정이 배어 있었다.
“금년도에 나왔습니까?”
“예, 금년도에 나왔습니다.”
마치 수사하는 사람처럼 일문일답으로 연이어 꼬치꼬치 캐묻는 어투에 기분이 꼬인 듯 했지만 잘도 참아가며 꼬박꼬박 대답 해 준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무언가 감을 잡은 모양이다. 허나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의 마음은 ‘뭐 저런 경우 없는 녀석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고 있다.
“송OO 입니다.”
끝까지 침착하게 또박또박 대답 해주는 우리 삼항사가 기특하게 여겨지니, 상대 선박 삼항사라는 친구는 더욱 몰상식하고 제 멋대로의 친구로 되어가고 있다.
“어, 너! 운항과 송OO이구나, 나, 항해과의 OOO야,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일학년 축제 때~”
어쩌고저쩌고하며 장황히 자신을 소개하는데 말투가 금세 반말로 바뀐다. 대학 시절 한 해 선배가 되는 모양이다. 여자를 대하며, 그것도 목소리만으로 인데, 상대를 확인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숨기어 알리지 않다가 상대가 누구라는 정보를 모두 알아낸 후에야 자신을 밝히며 이야기하는 그런 매너는 도대체 어디의 누구한테 배운 예의란 말인가?
옆에서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나한테도 후배가 되는 녀석이긴 하지만 별로 반가운 마음 안 든다.
혹시 나 역시 그 친구만큼 이기적인 가슴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순간 확인하고픈 마음에 얼른 손바닥으로 쓸어 본 내 가슴은 그냥 제자리에 얌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