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남은 음식을 바라보며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

by 전희태
아침식사.jpg 된장국, 밥과 3찬. 우유 또는 계란 프라이 한 개의 간단한 선내 조식 - 모델은 동승중이던 아내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내 앞에 주어진 음식물은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도록 작정을 하며 식사를 해왔다.

그런 습관은 해양대학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매 끼니때마다 일단 나에게 배식된 음식은 한 알 한 톨이라도 남기거나 버리지 않고 먹어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면서였다.


당시 음식물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먹을 것에 대한 욕심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음식물이 우리 앞에 먹을거리로 나설 때까지 겪게 되는 그간의 모든 어렵거나 힘들었을 형편 즉, 세상의 음식물로 존재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도 포기당한 채 오직 인간을 위한 변형으로 내 앞에 나선 것이니, 그런 보시를 소홀히 대한다는 건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상황을 크게 모독하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인간을 위한 음식물로서 재탄생된 그들에게 최대의 대접은 잘 먹어주어서 그들이 결코 쓸데없는 일로 죽어(변형) 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점심 식탁에 새우튀김이 반찬으로 나왔다. 그 튀김 접시를 밥과 함께 깨끗이 비워내고 있는데, 식탁 위에 누군가 잔반으로 남겨서 버리게 된 새우 몇 마리가 보인다.

"난 배부르다고 저렇게 음식을 남겨 놓을 수가 없어,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 불쌍해서 말이야!”

“그렇다고 저걸 또 먹어치울 수도 없는 거고--.”

방금 식사를 끝내가던 다른 동료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라도 듣는다는 표정 되어 쳐다본다.


보소, 세상의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왜? 란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아?

식탁에서 동물성의 음식을 보면, 최소한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쳐 먹을거리가 된 셈이니, 한 점 남김없이 먹어주는 게 그들이 세상에 나왔던 존재의 의미를 남겨주는 셈이 아닐까? 식물성의 음식물도 그것을 키워내며 땀 흘린 농부나 땅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단 한 톨의 낟알 갱이라도 그대로 버려져서는 안되는 일이 아닌가?


"결국, 그들은 사람의 식탁에 올라, 사람에게 몸 바치는 봉사를 하려 세상에 태어 난 셈인데, 음식으로는 변신됐지만, 제대로 봉사 못한 채 버려진다면, 강제로 삶만 제지당한 그 억울함을 어찌 보상해야 할까?"라고 내 생각을 풀이해주는 말을 듣더니 그제야 알아듣겠다고 수긍은 한다.


정말 음식물에 과도하게 욕심 부렸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는 사람을 보면 괘씸하고 미워 보이기까지 하는 일을 종종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뿐만이 아니라 무슨 물건이든지 주인을 잘못 만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를 보면, 그게 그렇게나 눈길을 거스르게 하고, 할 일을 제대로 못한 아까운 그 물건들의 형편이 안쓰러워지는 것이다. 결국 나한테 배당된 음식은 다 먹어 치워야 하는 이런 결벽성 비슷한 식사 태도 때문에 음식의 섭취가 과한 편이 되고, 그것은 나를 비만으로 데려다주는 첩경이 되어, 음식물을 대하는 내 태도의 변경을 은근히 요구하는 압력이 되어가고 있는 요즈음이기도 하다.


..... 이제 음식을 앞에 놓을 때는 그야말로 먹을 양만큼 맞게 준비하여 즐겁게 취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식사시간으로 가져야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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