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창 밖부터 살펴본다.
어제의 이 시간에 있었던 안개는 저리 가라 싶게끔, 짙게 젖어든 오늘의 안개가 선수의 갑판 수은등 불빛을 뿌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안개가 짙기는 하지만, 아침 6시에 도선사 승선은 무리라고 여기지 않아도 되게, 이미 오전 1015시로 늦어진 승선 시간이 전달되어와 있다는 귀띔을 들었기에, 구태여 확인하려 하지 않고 새벽 기상하면 행하고 있는 내 일-운동-부터 실행하기로 한다.
아침 운동까지 마치고 브리지에 올라가니 1015시에 도선사가 승선할 예정이란 스케줄로 바뀌어진 전문이 얌전히 놓여있다.
아주 잘된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안개 끼고 어둑어둑한 속에 도선사가 승선하는 것도 어렵지만 설사 무사히 탔다고 해도 안전하게 항로에 진입하여 부두로 향하는 일도 간단한 일이 아니니 밝아진 오전에 모든 걸 진행하여 들어가면 좋은 것이니까....
더 이상 늦어지지 않은 1015 시의 예정 시간에 도선사는 헬기로 날아왔다.
현문 사다리를 본선의 것이 아닌 육상의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도선사의 이야기에 가만히 생각하니, 전에 이곳을 들어왔을 때 육상의 것을 사용한 기억이 돼살아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기로 작정하고 미리 준비해달라고 하였다.
1435시부터 선적 작업이 시작되어 1950시까지 계속하니 7번 창은 예정했던 18,000톤에서 36톤이 더 실린 상태로 끝이 났다.
2215시에 도선사가 다시 승선하여 출항하는 예정을 세워 놓은 출항 수속을 위해, 본선에 온 대리점원이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며 지난 20일 우리 배와 P CHALLENGER호가 함께 이곳에 입항하러 접근할 때 실제로 어느 배가 먼저 항계 내로 들어왔느냐고 묻는다.
마지막 닻을 놓기 위해 항계에 먼저 들어선 것은 우리 배가 맞기에 물론 우리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배가 빠른 속력이라, 항계 도착 5-6 마일 전쯤에서 우리를 거의 앞서려 하고 있었지만, 당시 출항 선이 있어서 우리 양선박 모두에게 GREEN TO GREEN 즉 우현대 우현으로 항과 하도록 요청 해왔고, 양선 모두 그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미 입항을 위해 속력을 반속으로 달리고 있던 우리 배를 추월할 수가 없으니 그 출항 선과 위험한 항법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력을 낮추는 과정에서 위치 상 본선을 안전하게 추월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본선의 뒤에 따라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배는 우리 배한테 다시 떨어진 셈이 되었기에 먼저 도착해서 닻을 놓는다는 의미로 그 배는 항계에서 좀 벗어난 곳에 닻을 놓아, 투묘는 시간적으로는 우리를 앞섰지만 항계 내에 들지 못한 장소에 투묘를 한 셈이었다.
우리 배는 SEA BUOY 3 마일 이내에 투묘를 하지 말라는 항만당국의 지시를 따라 4 마일 지점 통과도 보고하고 결과적으로 3.5 마일 안쪽 지점에 투묘를 했던 것이다.
따라서 5.5 마일 밖에다 투묘를 하여 아직 항내로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고 여겨지는 그 배와 같은 시간인 11시에 항계 내인 SEABUOY로부터 3.5 마일 210도 지점에 투묘를 했다고 보고한 우리 배와는 대리점이 항만 VTS에 가서 각배가 보고한 내용을 녹음한 걸 들어보니 우리는 정식으로 보고를 했는데, 그 배는 제대로 항계를 통과했다는 보고도 없었고 포트 컨트롤에서 처음 항계를 들어선 것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1018시라고 우리가 들었을 때 깜짝 놀랐던 거짓의 시간으로 보고를 했던 것도 녹음이 되어 있었단다.
그들은 나중에 11시에 투묘했다고 정정하여 보고하며 자신이 먼저 도착했다고 우겼지만 모든 정황을 살펴서 본선이 SEA BUOY 4 마일 전에 도착함을 통보해준 1040시가 먼저 들어온 것을 알리는 결정적인 단서로 판단하여 N/RTENDERED TIME로 받아들이며 우리 배를 먼저 접안시켜 작업에 임하게 하였던 것이란다.
사실 닻을 놓은 시간은 본선에서는 닻을 던지는 시간이 우현 묘의 브레이크 밴드가 고착된 상태여서 원하던 시간에 넣어지진 못 했지만, 이미 그 장소에서 기관을 사용하여 닻을 넣을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단지 말썽을 부린 우현 묘를 좌현 묘로 바꿔서 넣느라고 지체된 시간 15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나는 그 늦어진 시간을 인정하기 싫어 11시에 투묘했다고 사후에 통보해준 것이다.
밤 11시 25분쯤 출항하여 한 시간 정도 지나며 보니, 우리가 매어져 있던 크린톤 부두에 접안하기 위해 P-찰렌져호는 열심히 어두운 수로를 달려와 우리와 서로 스쳐 지나 입항하고 있었다.
입항하여 한나절 만에 원하는 짐을 다 싣고 떠나는 마음은, 홀가분함에 젖어,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순서가 바뀔 수도 있었던 경쟁선의 입항을 기분 좋은 눈으로 배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