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생 끝에 낙원에 들었네

방파제로 갈라 선 항구의 바깥과 안쪽(와항과 내항)

by 전희태
B8(1374)1.jpg 바람이 외항에서 방파제 쪽으로(사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게 불어 큰 파도를 일구어 주는 경우, 이쯤에 들어서면 큰 횡요로인해 많이 고달프게 된다. 뉴캐슬 항구의 입구 모습.


우리 배가 닻을 내려놓고 있는 해안에서 결코 멀지 않은 내륙에다 뿌리를 내려두고 별로 움직이지도 않은 채 머뭇거리며 머무르고 있던 저기압이 그동안에 힘을 키우더니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밤새도록 바람소리와 파도가 함께 선체를 두드리고 퉁겨주는 여러 가지 잡음으로 인해 잠이 들 만하다가 깨어나곤 하는 곤욕을 치르게 만들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서 이런 기상의 영향으로 혹시 접안이 늦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는 마음이 항만당국에 예정을 다시 확인해 본다. 아직까지 1330시 도선사 승선 예정은 변함이 없단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접안 예정의 순서에 따라 미리 12시부터 닻을 감기 시작하는데 날씨는 여전히 같은 모양이다. 아직 3 샥클쯤의 체인이 남았을 무렵 밀려드는 파곡과 직각을 이룬 선수부가 들쑤석 거리는 흔들림에 높이 솟구치더니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누렇고 뿌연 녹 가루를 흩뜨리며 닻줄도 잠깐 튕겨 나가는 사고를 내었다.


만약에 그 제멋에 겨워 쓸려나가는 닻줄 가까이에 사람이 있어서 휘말리기라도 했으면 큰 사고일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한 샤클만 그대로 미끄러지며 수습되어 간 것으로 일이 끝나 다행이다.


작업자들이 체인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위험을 감수하며 신속하게 조치한 브레이크 밴드의 조임으로 무사하게 넘겨진 상황이었다.


안도의 숨을 돌리며 다시 조심스레 감아 들이니, 더 이상 사고의 보탬이 없이 완료하여 도선사를 태우기 위한 장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우리 배에 앞서 들어간 배의 접안이 지연되면서, 도선사 승선도 좀 늦어지게 되면서 너무 가깝게 방파제에 접근한 것 같아, 배를 다시 돌려 외항의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가려는데, 그대로 침로와 속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곧 승선하겠다고 도선용 헬리콥터에서 연락이 온다.


1355시.

1100Kg 무게의 작은 도선 헬리콥터가 타! 타! 타! 엔진 소리는 크게 내며 접근하여 얼른 본선으로 도선사를 승선시켜준다.

나로부터 조선 임무를 교대받은 도선사가 항구의 입구를 향해 접근해 가며, 현재 순간적으로 7 미터가 되는 횡파가 있어 위험하니 전속을 내어 들어가야 한다며 각별히 11노트의 속력을 준비해달라고 요청을 해 온다. 기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빠른 시간 안에 기관의 전속을 내주도록 요청했다.


항구 입구 방파제를 왼쪽에 두고 접근하며 옆으로 지나치는 작은 부표 부근에서 포트 텐(좌현 10도)의 전타명령을 받아 타를 왼쪽으로 돌려준다.


잠시 후 배가 왼쪽으로 돌기 시작하는데 불안한 좌전이 어느 정도 돌아갔을 때 갑자기 허연 포말을 이끌고 나타난 높이 7 미터짜리 너울이 약간 기울어진 배의 왼쪽 편 외판을 강타하여 흔들어 놓으니 꽈광! 하는 굉음과 함께 배 안 실내에서는 갑자기 떨어지고 깨어지며 박살이 나는 온갖 소리가 우수수! 흘러나온다.


브리지에서도 창가에 놔두었던 화분이 떨어져서 박살이 나는데 단 한번 다가와서 한방을 먹인 그런 너울의 내습으로 배 안은 어수선하게 되었지만, 배는 그런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왼쪽으로 계속 돌아주어 방파제 입구로 다가서서 제가 가야 할 침로를 찾아내고 있다.


도대체 몇 도나 기울어서 그리 됐나? CLINOMETER의 멈춤 눈금을 쳐다보니 좌, 우현 모두에 27도 표시에 머물러 있다.

그 정도의 기울기라면 대양에서는 별것도 아닌 경사로 여길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순간적으로 달려들었고 수심도 대양에 비해 훨씬 작은 22미터 밖에 안되고 있다. 한번 계산을 해볼까? 얼른 속셈을 해 본다.


7 미터의 너울에 이끌리어 솟아 올라갔다가 순간적으로 뚝 떨어져 낮아지면서 선체가 기울었다면 갑자기 29미터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15미터 정도로 떨어진 수심에 걸린 셈이니 흘수 10미터를 빼고 보면 해저와 선체 간 간격이 5미터 정도였다는 결론이다.


29 미터에서 15 미터까지 떨어지며 받는 순간적인 충격이 단 한 번이긴 해도, 작을 리는 없는데 그래도 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누렇게 변해진 흙탕물을 뒤로 보내며 늠름하게 제 모습을 찾아 잔잔해지기 시작하는 항구의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다.


외항의 바람이 얼마이건 이미 들어선 항구 안에는 잔잔한 수면에 바람도 육상 지표면과 구조물들에 가려지니 훨씬 조용한 것이 이것이 바로 <고생 끝 낙원 입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갑자기 우리가 방금 들어온 바깥 외항에서 이 바람과 파도 속에 닻을 놓은 채 기다리도록 남겨진 다른 배들의 현실이 애처롭고 가련한 생각이 들면서 나 혼자 편하고 안전하게 된 것이 미안하다는 감정마저 생기지만, 어쨌든 그런 곳을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곳에 들어섰다는 기쁨은 온 입안 가득히 달콤함을 채워 받는 느낌을 베풀어주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학꽁치를 뜰채로 건져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