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을 할 것이냐, 좀 더 머물 것이냐
접안 전부터 몇 번이나 출항시간이 변경되면서 잦은 선적 화물량의 변동이 부담스럽더니 결국은 최대 선적의 경우에서 5,000톤 정도를 덜 싣고 떠나야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받아 놓았던 출항 예정 시간이 2일 아침 고조 시였다.
그 시간이 되어갈 무렵, 이번에는 출항에 문제가 되는 기상 악화가 다가와서 입항선 들의 항구 출입을 폐쇄해야 하는 일이 발생되니 결국 12시간이 늦어진 다음 고조시인 저녁에 출항함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발생된 것이다.
그리 될 경우의 저녁 고조시가 좋은 조고를 갖고 있기에 5000톤의 화물을 다시 더 실을 수 있는 찬스가 따라나섰지만,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의논하기 위해 본사의 담당 S과장의 휴일 오후를 잠시나마 빼앗아야 했던 번거로운 일도 생겼다.
2일 새벽. 아직 본선에 계류시키지는 않았으나 출항을 도우려는 예인선들이 이미 본선의 부근을 지키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승선한 도선사가 기상의 악화가 계속되어 출항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최종적인 결정은 나의 의견에 따른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을 때 나는 대리점 Operation Manager인 Bill Drennan과 함께 셋이 마주 앉아 있던 상황이었다.
자신이 할 이야기만을 열심히 설명하고 난 후 이제 할 말은 다했다는 듯이 더 이상의 말은 접고 침묵을 지키며 나의 결정을 들으려 하는 그 사람들을 잠시 쳐다보았다.
-"................... "
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특히 도선사는 나의 결정을 기다린다는 제스처까지 써가며 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I will stay at this berth to next hightide. 한참의 침묵 끝에 출항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의 말을 하였다.
전날부터 이미 나빠지기 시작하던 기상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 첫째 이유가 된 것은 접안을 위해 항구로 들어올 때에 항 방파제 입구에서 만난 너울로 인한 기분 나쁜 경험 때문이었다.
좌현 쪽에서 달려들던 커다란 너울에게 단 한번 옆구리를 쥐어 박혀 선체에 격렬한 충격을 받았는데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인 27도의 선체 경사를 남겼었다.
이제 출항하면서 또 그런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게끔 아직도 너울의 위세가 상당한 상황이라면 안전을 위해서는 짐까지 만재 한 배를 띄울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입항해서부터 화물 작업이 끝난 후 까지도 계속해서 실행해야 했던 발라스트 배출이 여러 가지 밸브, 펌프 등의 고장 등이 겹쳐지며 힘들었지만, 중간에 선적작업을 네 시간 중단시켜가며 어렵사리 끝낼 수 있어서 예정한 화물이 힘에 겨웠지만 무사히 실려진 것이 고마웠을 뿐이다.
이제 출항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그 출항을 하느냐 마느냐가 나의 결정에 달렸다며 항 입구의 너울 상황을 둘러보고 와서 자신은 출항을 하겠다 말겠다는 결정적인 언질은 주지도 않은 채, 도선사는 나의 마지막 결단만을 촉구하고 있다.
출항 수속을 도와주려 나와 있는 대리점 직원 앞에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의 생각을 빠르게 굴리며 생각해낸 나의 마지막 결단은,
<<배의 안전이 제일이다. 지금 현재의 방파제 바깥 너울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도선사의 현지답사 결과를 참조하고, 또 들어올 때 당했던 경험을 되살려 보건 데 출항 시간은 저녁 고조시로 미루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로 결정 그런 대답을 하여 우리 배로 하여금 출항 시간을 한나절 지연시킨 것이다.
저녁때가 되어도 기상 상황이 더 좋아지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더욱 나빠져서 저녁 시간에도 출항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도선사의 의도가 저변에 있는가 하는 의심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실제로 더욱 나빠지면 어찌 되나 하는 걱정은 지금 같은 때에도 못 나가는데 나빠지면 더욱 못 나가는 것이란 자명한 진리로 깨우치니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하여 마지못해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출항하였다가 평생 후회하는 일을 당하느니 안전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아닐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앞설 때는 우선은 안전한 쪽을 지키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판단 아래 최종적으로 출항의 연기를 현명한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도선사가 우리 배에 와서 출항 작업이 아닌 Swell을 두고 나와 의견을 나눴다는 Remark를 달아놓은 bill에 서명을 해주고 <뉴캐슬 하버 컨트롤>에도 출항을 저녁때로 늦춘다는 통보를 도선사를 통해 해주니 이 아침 새벽부터 기다렸던 출항은 뒤로 12시간 미뤄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남은 저녁 고조시의 조고 차이가 아침의 시간 때 보다 무려 60센티미터나 더 높기에 그에 알 맞는 약 5,6천 톤의 화물을 더 실을 수 있는 환경이 발생된 것은 배의 안전을 감안하여 출항이 미뤄지는 판에 그만큼 더 실었다가 혹시 저녁에도 출항이 안 되고 내일 아침에야 가능한 일이 다시 발생할 경우 흘수의 과다로 인해 자동적으로 내일 저녁때까지 미뤄야 하는 또 다른 소탐대실의 위험부담을 갖게 되는 일이 우려되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조고 차이만큼의 Keel Clearance를 더 갖는 것이 안전을 위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화물의 추가 선적 요청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당신의 결정이 옳았다.
출항을 미루기로 결정하고 난 후 저녁에 다시 오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대리점 직원이 내 판단이 안전한 운항에 도움이 될 것이란 뜻의 이야기를 하며 들려준 이야기였다.
오전 중에는 계속 바람이 한 번씩 불어주며 녹록지 않은 바깥 사정을 보여주었지만 오후에 들어서면서 기상 상황은 바라던 대로 순한 양으로 변하듯 많이 수그러들어서 안도하는 마음속에 출항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새 무사히 항내를 빠져나오고 도선사도 안전하게 하선하여 돌아갔다. 투묘하고 있는 대기 선들 사이를 피해서 완전히 외해로 빠져나온 다음, 당직사관에게 당직 임무를 넘겨주면서 새벽에 결단했던 행동이 힘들기는 했지만 잘 내린 결정이었음을 재확인받는 심정은- 오랜만에 배 타는 맛을 재음미해본 흐뭇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