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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뒤의 달콤한 휴식

항해가 편안한 사실인 또 하나의 이유.

by 전희태
B13(6588)1.jpg 도선사의 하선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헬기의 모습. 옆에 보이는 외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배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고된 전투가 끝이 났다는 기쁨의 마음을 은근히 즐긴다.


전장에서 격렬한 전투를 힘겹게 치르며 모든 적을 격퇴시켜서 당분간 위험이 없을 것이란 징후마저 차지한 이긴 기쁨이 만들어 주는 나른한 기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까?


하루 종일 계속되는 잦은 횡요(橫搖)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무섭거나 힘들지 않고 오히려 다정스럽게 여겨지는 잔잔함과 함께 이어지고 있는 항해가 한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만약 어제의 결정이 달라져서, 12시간 먼저 출항했다면 무사히 항구 입구를 빠져나왔을 지라도, 오히려 지금보다는 훨씬 더 크고 힘든 횡파(橫波)가 나를 맞이해 주었을 것이란 확신이 가기 때문이다.


짐을 실어준 상태도 아주 깔끔하여 갑판 위나 해치 커버 위로 떨어진 낙화물이 별로 없이 아주 깔끔하니 해줘서 출항 후인 오늘 갑판을 해수로 씻어내야 하는 갑판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니 그것도 이곳 뉴캐슬 구라강 부두의 좋은 점의 하나이다.


비록 월요일이긴 하지만 한바탕의 결전에서 이기고 떠나온 승자의 기쁨을 누리듯 실내의 어지러워져 있는 청소상태를 대강 손보기만 하고 하루를 빈둥거리듯이 편하게 보내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이유의 하나가 선적 상태가 아주 양호하여, 갑판에 흩어진 석탄가루를 치우는 물청소를 당장 안 해도 되는 상황을 주었기 때문이다.


적도를 향해 서서히 올라가는 항로이니 매시간이 다르게 더위가 찾아오고 있는데, 어제까지도 추웠다는 인식에 기관부에서는 아직 에어컨디셔너를 돌리려는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간에 밀려나서 쌓였던 여러 가지 고장이나 트러블을 하나씩 해결하는 문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기관부를 독촉해가며 에어컨디셔너를 돌리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들도 더위를 느끼면 얼른 돌려야 할 기계 이건만 그렁저렁하고 있는 품새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다른 것은 돌아다볼 여지가 전연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왕지사 그리된 것, 그들이 더위를 느낀 필요로 냉방기를 돌리려 할 때까지는 자연의 대기가 좋은 것이여~~

그런 마음으로 비록 땀이야 흘리지만 그것 역시 신체에서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진대사에 좋은 경험을 축적시켜 주는 일이라 여기기로 하니 짜증 부릴 여가도 그냥 사라진다.


그러던 오후에 들어서며, 우리나라도 이제 올라가면 한 여름이니 앞으로 계속 사용해야 하는 냉방기를 고장 없이 돌리기 위해 사전 점검 차원의 작업을 실시 중이며 곧 시원하도록 돌려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기관장이 일부러 찾아와 들려준다.


그러면 그렇지 그들이 냉방기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로구나!

더욱이 더우면 땀을 많이 흘리며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해 주는 마음씨도 그 안에 들어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니, 조그마한 것에도 환희할 수 있는 내 마음은 작은 기쁨과 편안함에 절로 빠져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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