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H 헤이 포인트 호를 만나다.

한국배 나오세요

by 전희태
E8(1344)1.jpg 서로 스쳐지나서 자신의 갈길로 헤어져 가는 배와 배의 모습


역시 배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니 만나게 되는 배들도 많고, 그중에는 한국 배도 많이 끼어있다.

어제는 우리 회사의 뉴 다이아몬드 호를 만나더니 오늘은 우리 배나 마찬가지로 이곳을 주로 다니는 H해운의 광탄 선인 H헤이 포인트 호를 한낮에 만나게 되었다.


-한국 배 나오세요.

하는 말이 저 쪽 우현 선수에서 우리와 서로 비껴가는 코스로 남하하고 있는 배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 응답을 하고 나가니,


-이항사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바꿔주시겠습니까?

하는 말이 나온다.


방금 이항사와 당직 교대를 하려고 올라와서 전화에 응답하고 나갔던 일항사가 뚱하니 전화를 이항사에게 넘겨준다.


-전화 바꿨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4년 배를 떠났다가, 다시 나왔는데 GPS의 소리가 죽어서 나오지 않아 그러는 데 왜 그러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기종인지 알아야 하는데... 저희는 GIMLAD입니다.

이항사가 조금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아 우리 것 하고는 다르군요.

하며 상대는 좀 실망했다는 투로 말을 받으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2 항사가 갑자기 물음의 톤을 공손히 낮추더니,


-혹시 OOO 씨 아니세요?

하고 물으니


-맞는데요. 어떻게 아시지요?

의아한 음색으로 대답 해온다.


-아 저 XXX입니다.

이항사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야! 너 연가로 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타고 있구나.

대뜸 상대의 말투가 완전히 달라지며 새롭게 안부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야기인즉 우리 배 2 항사가 상대방 2 항사의 대학교 2년 후배로서 학창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주고받는 대화이긴 하지만, 스피커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들을 수 있기에 거북한 마음이 들어, 눈짓으로 이항사에게 스피커를 끄고 송수화기로 통화하도록 유도해준다.


스위치를 전환해 준 덕분에 갑자기 스피커의 소리가 꺼지어, 실내가 조용해진 느낌이 드는 통화로 바뀌었다.


브리지 내에서 자연스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이번에는 우리와 스쳐 지나치려는 그 배의 모습에 관심을 보내며, 창밖으로 돌려지고 있다.


육지에서는 차를 타고 가면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도 금하는 판이지만, 선박의 경우에는 오히려 이렇게 가까이 지나치게 되면, 육지에서의 휴대폰 택인 VHF전화로 상대를 불러 안전통항을 위한 서로의 협조 동작을 이야기하는 등 통화를 권장하여, 안전운항에 도움을 주는 기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선박과 자동차에서 서로 다른 점이라고 들 수 있는 것은 빠르고 또는 늦은 속력의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뿐인데, 그 점 때문에 이용 방법이 전화를 걸 수 있게, 또는 못 걸게 하는 차이를 두게끔 달라지는 모양이다.


상대선의 모습이 이제는 뚜렷해져서 윙 브리지에 나와서 손을 흔드는 사람의 모습도 알아 볼만 해지니 우리 배에서도 몇 사람이 문을 열고 윙 브리지로 나서며 손을 흔들어 준다.


한낮의 조용한 바다 위에서 조우하여 서로를 지나쳐 멀어지기 시작하는 두 선박의 모습이 코럴 씨(산호 해)의 해면 위에 조용히 그림 그려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시각 차이(視覺 差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