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욋일 같지만 결코 가욋일이 아닌
점심시간에도 제 때에 와서 식사를 못하고 자리를 비웠는데, 저녁 식사조차 모두의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다 마칠 때까지도 기관장을 위시한 기관 사관들은 식당에 나타나지 못하고 기관실에서 일에 매달려 있다.
-기관장님, 회사로부터 무슨 특명이라도 받고 왔어요?
언중유골의 이런 농담조 이야기까지 동료들 한데서 들어가며 새로 온 기관장은 그냥 두고 보기에 불안한 상태의 모든 기계들을 살피며 돌보는 오버 호울(Over Haul)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도 마치 자신의 아픈 곳을 하소연이라도 하듯 그간에는 그렁저렁 잘 돌아가던 부위들에서 슬슬 고장을 터뜨려 주어 안 그래도 일에 파묻혀 있는 기관실 근무자를 더욱 바쁘고 바쁘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대충 꾸려주고 붙여주며 설렁설렁 넘어갔던 일의 후유증이 한목에 달려드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소소한 고장에서부터 중요한 결함을 내포한 큰일 날 수 있는 일까지 번갈아 가며 나타나 주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금 살피고 살펴보는 열심인 눈길이 생겼기 때문이겠지.....
어쨌거나 다행이었던 것은 수리를 하며 알게 된, 만약 힘들게 분해해가며 수리를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진행되고 있던 결함도 한두 가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은 작업 당사자들을 전율케 하고, 그래서 다른 모든 부위에 대해서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만큼 철저하게 살피고 정비하여야 마음을 놓을 성싶어, 밥 먹을 시간도 미뤄가며 강행군으로 진행하는 현상을 낳고 있는 거다.
뉴캐슬 출항 후 그런 생활이 계속되어 오니, 처음에는 잘 따라 주던 사람들조차 야금야금 눈치를 보며 꾀를 부리는 경향을 나타내고, 아예 힘들고 싫어서 못하겠다는 직접적인 눈치를 보이는 사람도 생기는 모양이다.
하늘이라도 도와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어 할 수 없이 일을 포기하고 쉬는 경우가 왔으면 바랄 정도로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힘겹게 느끼는 모양이다.
이제 일의 진행 능률로 볼 때 진척이 빠르고 결과가 금세 나타나는 최대의 효율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시기는 이렇듯 누적되어가는 피로로 인해 줄어들 수도 있어 보인다. 조금씩 쉬어가며 일을 진행하라는 충고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판단이 든다.
그러니 비바람이 심하게 들이쳐서, 쉬게 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고생을 초래하는 일이므로, 그냥 날씨가 좋더라도 나쁜 날씨라 여기고 잠시 쉬어가는 한 템포 늦춘 작업으로 일을 재정비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내어봐야겠다.
어떻든, 이렇듯이 아주 맘에 드는 참모와 함께하는 요즘의 선내 형편은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흡족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