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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조종 및 경고 신호

지내 놓고 보니 참 여러 가지로 큰일 날뻔한 밤이었네

by 전희태
C805(7950)1.jpg 포항 출입항 방파제에 접근을 하며


어제 이른 저녁 무렵 광양을 떠났다. 열심히 달린 포항을 향한 뱃길이 한밤중 지나며 새벽을 맞이할 무렵.

비몽사몽 간을 헤매고 있든 내 잠자리 벼갯머리께로 뿡-뿡 대는 마구 울려주는 급한 자동차 경적 같은 기적소리가 갑작스레 시끄러움을 몰고 찾아들었다.


깜짝 놀라 깨어난 정신을 추스르며 얼른 일어나서, 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부터 들추어 선수 쪽을 내다본다. 바라다보이는 선수부 쪽은 깜깜한 어둠뿐, 별달리 이상한 기척은 보이질 않고 있다.


얼른 브리지로 전화를 걸어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면서도 창 밖을 바라보는 눈길은 의아함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수초 동안의 기다림 속에 분주히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천정을 통해 울려오는 기척 가운데 송화기를 들었는지 숨찬 이항사의 목소리가 응답 소리로 들려온다.


-여보세요, 브리지 이항삽니다.

-무슨 일이야?

(왜 경적을 울렸는지를 물은 말이다.)


-선장님, 뒤에서 자꾸 가깝게 접근해 오는 배가 있어서요.

2항사의 대답을 듣는 순간, 아무래도 이상한 조짐이 느껴져, 수화기를 던지듯 놓아준 후, 겉옷을 찾아 팔에 꿰어 입으며 그대로 방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2항사가 다시 걸어온 전화벨 소리라고 직감을 하지만, 전화받는 시간도 아깝게 여겨질 정도의 비상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무시한 채 부리나케 선교로 뛰어들며 주위 상황부터 살핀다.


우리 배의 우현 선미 쪽에서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운 물체가 터닝 운동을 하느라 흰 항적을 둥그렇게 드리운 채 힘겹게 돌고 있는 모습이 어둠 속에 숨은 도둑놈처럼 확인된다.


그런 운동 중인 상대 선을 보는 순간 등골은 여지없이 서늘해졌지만, 순간적이지만 그 배와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감각이 퍼뜩 들어서며, 위험한 상황(충돌이나 접촉사고)은 지났다는 편안함이 순간적으로 찾아들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당직사관인 2항사의 말로는, 우현 선미로 자꾸 접근하여서 기적을 울렸다는 것이니, 진짜로 기적을 자동차의 경적 마냥 사용했던 모양이다.


-무슨 뜻으로 그런 기적소리로 울린 거야?

하는 말에 우물거리며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게 더욱 그런 추측을 확실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경우 낼 수 있는 기적소리는 국제충돌 예방법 34조 d항의 단음 5회 이상의 급한 취명(吹鳴)이다.


상대선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 는 의문을 나타낼 때 발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리와 함께 동시에 눈에 보이는 등불의 섬광을 보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또한 동법 36조 주의 환기 신호는, 타선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음 10초 정도의 취명으로 상대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행동을 취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항사는 그 두 가지 법에 명시한 방법 모두가 아닌 그냥 짤막하게 단음 한 번을 급하게 울렸고, 잠시 후의 급한 마음은 또다시 단음을 울리는 식으로, 당시 상황에 법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자동차의 경적 같은 의미뿐인 제멋대로의 취명을 한 것이다.


단음을 울려야 할 경우를 충예법에서 더 찾아본다면, 조종 신호로서 본선이 타효를 갖추고 오른쪽으로 돌아간다는 의사와 결과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단음 한번, 왼쪽으로 돈다면 단음 두 번이고, 엔진을 사용하여 후진 상황을 알리는 것은 단음 세 번을 연속 취명 하는 거다.


따라서 제멋대로의 단음을 취명 한 것은 조타기나 기관을 사용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도, 상대 선에게는 본선의 조타 상황을 알린 것으로 오해를 줄 여지가 있는 명확한 잘못을 범한 취명인 셈이다.


만약에 그런 경우로 충돌사고라도 발생했다면, 상대선에서 그런 취명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우리 배가 오른쪽(또는 왼쪽)으로 돌아주는 줄 알고 자신은 행동했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해도, 꼼짝없이 본선의 일차 잘못이란 귀책사유로 단정 당할 수밖에 없는 법적으로도 불리한 잘못된 취명인 것이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본선과의 접촉이나 충돌을 피하려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준 우현 선미 쪽에 있든 상대선이 점점 멀어지며,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여주니, 안심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의 다른 위험한 상황은 주위에 없음을 확인한 후 브리지를 내려오지만 마음은 계속 무겁기만 하다.


하룻밤에 국내항 사이를 움직이는 연안 항해이지만, 가족들을 동승시켜 항해하려고 내규에 살짝 어긋난 방법까지 동원한 형편이므로, 만에 하나 작은 사고라도 발생되면 그 사실이 더욱 괴로워지게 되는 입장이라 최대로 조심해야겠다 든 출항할 때의 마음이 앙금으로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새벽 5시가 가까워오고 있다. 이미 방으로 돌아왔지만, 잠이 멀리 가버린 형편이라 어두운 사무실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는 데 이번에는 갑자기 장음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커튼을 들치며 내다본 선수 쪽으로 흐릿하니 깔려 드는 안개가 보인다. 이번 취명은 무중 항해를 위한 충예법 35조 a항의 대수 속력이 있는 동력선이 2분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성 1발을 취명해야 한다는 법대로의 무중신호를 취명 하는 소리임을 감지한다.


우리 배에는 법에 따른 두 개의 기적(Horn) 설비가 있다. 통상적인 무중 항해 시 주로 사용하는 건 앞쪽의 전부 마스트에 부착된 기적인데 현재 고장이 나서 수리 중이라 사용할 수 없어, 후부 거주구 쪽에 가까이 있는 메인 마스트의 2번 기적을 사용하므로, 기적소리가 날 때마다 더욱 빨리 알아채게 만드는 것이다.


무중 항해 중임을 알고 나서는 도저히 모른 채 할 수 없는 게 선장의 직책이다. 다시 브리지로 올라간다.

자신의 당직시간인 새벽 네 시가 이미 한 시간 이상 지나가고 있는 2항사가 아직도 당직에 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짜증부터 든다. 교대자가 당직 교대를 안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일항사는 왜 안 올라왔어? 깨우기는 한 거야?

대답을 우물거리는 2항사를 제치고, 올라오라는 지시를 내리려고 일항사의 방으로 전화를 거니 통화 중 음이 계속 울려 나온다. 수화기가 잘못 놓인 모양이다.


답답한 마음에 그의 방을 열고 연락을 취하려고 해보지만 마스터키도 일항사가 갖고 있다. 이제 마지막 방법은 그의 방을 두드리고 여는 것인데, 바로 그의 옆방에 어제 승선한 손님들이 투숙하고 있어 큰 소리를 내기가 민망하여 안개를 핑계한 무중신호를 계속 내기로 한다.


자신의 당직시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계속되는 무중신호 소리에 벌써 올라왔을 건데 아예 올라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환하게 꿰차게 된 내 마음은 밝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개 낀 바깥만큼이나 어둡고 답답함에 빠져 들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어느덧 여명을 향해 달려가는데 다행히도 안개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이항사와 당직교대를 해주어 내려 보내 주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게 포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내가 당직을 계속 서는 형태를 취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잠시 후 일항사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브리지에 나타났다.

-.............


별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주면서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기적 수리와 관련된 이야기만 한 후, 당직을 철저히 잘 서라는 말을 남겨주며 브리지를 내려왔다.


외부 인사까지 본선에 탑승하여 운항하고 있는 각별한 시간인데, 자신의 당직 시간을 망각하고 있던 그의 당직서는 태도는, 이미 나의 눈밖에 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더 이상 떠들며 왈가왈부하지 않은 것은, 그저 조용히 집으로 물러가, 애나 봐야 하는 상태라고 내 마음을 굳힌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당직을 계속 서야 하는 사람에게 잔소리와 욕으로 다스린다는 게,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기에 취해준 배려이다.


신경을 계속 곤두서게 하며 밤을 지새우다시피 만들어 주던 일들도 새벽의 도래와 함께 모두 물러가고, 드디어 무사히 포항 외항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도선사를 승선시켰다.


도선사의 지휘 아래 9번 정박지에 안전하게 투묘를 끝내니, 밤을 새워가며 날이 섰던 신경도 한숨 돌려지며, 밀렸던 피곤이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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