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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부부의 관심사가 닮아 가는 과정

by 전희태
BB(3685)1.jpg 접안한 배 옆에다 기름 유출시 오염 확산을 방지하려고 쳐두는 오일 펜스의 모습.


벌써 이곳 포항에 도착한지도 만 하루가 지나고 있는 데, 엊저녁부터는 날씨마저 잔뜩 흐려져 가고 있다.

마침 대기 투묘지에 정박하고 있는 본선으로 아침 아홉 시 정기 통선이 들어오고 있다.

경북지방에 내려진 호우주의보에 걸맞은 후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굵은 빗줄기도 함께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내일이면 시작될 접안에 대비하여 미리 갑판 위 SCUPPER(배출구)를 막아 놓았었다. 혹시 본선 갑판 위로 흘러나온 기름기가 즉시 선외로 빠져나가게 되는 일차 유출 기름 오염사고를 대비한 해상 오염 방지를 위해 국내 항구에 입항 시 본선이 취해야 하는 항만당국이 지시하는 오염방지를 위한 강제 조치의 한 가지 일이다.


그 때문에 고이게 된 많은 빗물이 현재 배의 트림(TRIM)으로 봐서 갑판상 가장 낮아진 곳이 되어버린 바로 현문 사다리를 수납하는 곳에 있는 배출구 쪽으로 모이기 시작하여 한 뼘 정도 높이로 막아 놓은 턱을 훌쩍 뛰어넘는 양으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은근한 선체 롤링에 따라 흘러 넘치기를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현측에 내려진 현문 사다리 끝단 발판 위에다 당직 교대하려 귀선 하는 선원들을 부려준 후 잠시 떨어져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상륙하려는 사람들을 태우려고 갑판에 고여진 빗물이 덜 내리는 순간을 포착하여 접근하지만, 그때마다 이미 고여있던 빗물이 선체의 롤링에 따라 거세게 흘러넘치며 그들의 접근을 방해한다.


본선 선수 쪽으로부터 접근하여 자신의 선수를 우리 배의 현문 사다리 발판에 대려던 바로 그 순간 쏟아져 내리는 고인 빗물의 마중이 괴로워진 통선은 급한 후진으로 피하면서 가쁜 숨이라도 몰아 내쉬듯 자신의 내부로 부어진 빗물을 처리하면서 기름기가 섞인 빌지를 살짝 토해내는 모양이다.


순간 잿빛 하늘 아래 빗줄기가 퍼부어지고 있는 짙은 회색의 바다 위로 오색찬란한 빛깔을 뽐내는 기름띠가 나타난다.


그 무렵 갑판 위 현문입구 현장에서는, 막아 놓은 배수구를 그대로 두고서는 통선의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갑판에 고여진 빗물이 빨리 빠져나가도록 현문 사다리를 내려준 우현 쪽에 있는 막아 놓고 있던 SCUPPER의 개방을 지시한 내 명령을 따른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걸레로 막고 시멘트로 굳혀 놓았던 배출구를 다시 열어주니, 고여있던 빗물이 폭포수 같이 쏟아지며 방금 생긴 기름띠 위에 퍼부어주어 마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우리 배에서 기름기가 새어 나갔나 의심이 들 정도의 형편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뒤로 후진하는 통선의 움직임에 따라 물 위에 희석되는 기름의 띠가 통선 꽁무니에 이어져 뒤로 물러나면서 본선과는 무관함을 보여주어 우선 안심은 되지만, 기름기를 조심성 없이 바다에 풀어놓는 그런 행위를 한 통선이 괘씸한 생각이 들어, 상륙하려는 선원에게 통선을 타게 되면 그 무법성에 항의를 하고 심각성도 알려주라고 지시해 주었다.


통선 선장도 즉시 빌지 배출을 중지시킨 모양이다. 더 이상 기름기가 늘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현장을 물러났다.


방에 있는 줄 알고 있었던 아내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후부 1번 갑판의 통로를 따라 바삐 오는 것이 보이고, 그녀에 앞서서 서두르는 모습의 3항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급하게 통로 문을 열면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일이에요?

묻는 나에게

-기름기가 배에서 나가서요.

아내는 우현 갑판에서 기름기가 선외로 배출되어 작은 기름띠를 만들어 놓고 있다며, 나에게 알려주려고 밑으로 내려와 나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방금 3 항사에게 알려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아하 그거요. 그것은 통선에서 배출해놓은 기름기랍니다.

나는 좀 전에 발생했던 일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아내가 보여준 그 행동이 기특한 마음이 든다.


-당신도 이제는 제법이야.

하니 아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술 더 뜬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아니어요?

한다.

-그래요, 맞는 말이긴 하지요.

아직도 갸륵한 마음이 들어 은근한 눈길로 응대해 주며, 한번 더 현장을 살피려 우현 보트 갑판을 향해 나가 본다.


이미 상륙자들을 싣고 떠나가는 통선이 저 멀리 빗속으로 멀어져 보이며, 현문 사다리가 들어 올려진 바다 위에는 빗방울이 튕겨내는 뽀얀 기운만이 병풍처럼 서려있어 기름기의 흔적은 눈에 뜨이지 않고 있다.


아내를 방으로 보낸 다음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 들렸다.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다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뱃사람 마누라 30년도 제법이더군.

하며 둘러보니 모두들 와아! 하고 웃는 가운데 아내의 행동이 멋있다는 표정을 짓는 것 같은 느낌도 함께 받아 본다. 그것이 아내가 내 사람이기 때문에 가져보는 자화자찬 만은 아니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어쩌면 군대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로 사단장 사모님이 행하는 군대적인 사고방식에 젖은 행동이나 말에 명령 같은 월권행위를 한다고 비쭉 이는 입살에 올랐던 이야기들도 이런 일과 일맥상통하는 건 아닐까? 문득 군대문화와 닮아 있을 수 있는 우리네 선내 생활을 한 번쯤 비교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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