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갈래 길을 정리해 보며
물앙초란 꽃이 있다. 내 기억력과 씨름질 할 일이 생길 때마다 꽃말과 함께 한 번씩 떠오르는 꽃이다.
오늘도 또 그 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원양항로를 운항하는 사선 앞으로 배달해 놓은 구독 신문과 월간 잡지를 적당기간 모아 두었다가 그 배가 국내항에 입항할 때에 전달해준다.
물론 우리나라에 기항하지 못하는 불기항 원항선을 위해서는 외국의 기항지로 보내 주기도 한다. 모두 선원들의 복리를 위해 회사가 서비스해주는 일이다.
금항 광양 입항 시에 본선을 위해 그렇게 전달받은 월간 잡지를 나중 출항한 후 원양 항해 중에 읽겠다고 생각하고 한 옆으로 밀어 두었었다.
출항 후 그 책을 읽을 생각이 들어 찾아보는데, 어디에 두었었는지 도대체 생각도 나지 않고 눈에 뜨이지도 않아 안달 나게 만든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찾다가 짜증이 난 마음은 혹시 우리 승조원 중의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 허락도 없이 그 책을 가지고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조차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그럴 수는 없는 거지~, 누가 선장 방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제 욕심대로 그렇게 할 수 있겠어? 하는 마음에 다시 찾아보느라고 온 방안을 열심히 뒤져 보았으나,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결국 찾아내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포기한 채 다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데, 오늘 우연히 방의 한 구석에 있던 의자 위에 놓인 신문지 뭉치를 치우면서 손이 닿은 그 밑자리에 깔려있던 월간지를 발견해 냈다.
-그러면 그렇지 지가 간다고 해서 어디를 얼마나 갈 거야!’
하는 심정에 괜스레 불특정의 우리 승조원을 잠시나마 의심했던 점이 미안한 일로 떠오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거나, 잃어버린 어떤 물건을 찾다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찾을 수 없는 경우에 이르렀을 때를 가만히 되짚어 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제삼자나 제삼의 일이 개입되었을 거라는 선입견을 마음 가운데 두었던 거 같다.
그렇게 나의 기억 못 함이나 불찰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의심해가며 얼버무리는 자세였어도 더 깊이 그런 생각에 빠지지 않은 채, 그나마 그 물건은 잃어버린 것이 아닌 꼭 찾아내 지리라는 믿음 같은 마음이 드는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경험에선 찾던 일을 멈추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잊은 듯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 안 가서 평소에 생각해내지 못했던 때나 장소에서 찾아내어, 기쁨으로 해결한 상황도 심심찮게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했을 때와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를 했을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결과가 나를 찾아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반대의 다른 두 가지 길이 나의 생각 나름의 결과라는 점을 가로 늦게 근래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으니, 어쩌면 나는 못 말리는 우둔한 사람인 건 아닌지....
어쨌든 이런 식의 기억력 감퇴가 자주 감지됨이 어제오늘이 아니라 어언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시쳇말로 6학년 반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어찌 그리도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는 한심하게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우만을 되풀이했던 것 같다.
이제는 기억력의 감퇴를 보충하기 위해 새삼스레 메모장을 준비해 가지고 다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메모장을 찾느라고 부산을 떠는 적도 있으니, 어쨌거나 예전 같지 않은 나 자신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나이 들어감을 은근히 두려워하는 심정- 또한 가지고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앞으로는 결코 내 기억력의 모자람으로 인해 해결이 힘들어진 일들을 제삼자가 개입하여 어려워진 것처럼 느끼려는 어리석은 핑계에서 만큼은 자유로운 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