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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정지 그리고 수리

고압 파이프의 수리

by 전희태
B601(1063)1.jpg 호주로의 순항중 만나는 열대 해역 어느 섬의 모습


어제 오후.

주기관의 F.O 공급용 고압 파이프에 파공(破孔)이 생겨 기름이 새어 나오므로 기관을 정지하고 수리를 해야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바로 솔로몬 바다와 산호바다 사이에 있는 조마드 수로의 한가운데로 진입하여 양쪽으로 흰 거품을 물고 있는 얕은 산호초들의 모습을 1마일 정도의 거리로 보면서 달리고 있을 때였다.


기관실의 입장에선 당장 배를 세우고 수리를 시작하고픈 마음이겠지만, 브리지의 판단은 배를 포기하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배를 세울 수가 없는 비좁고 위험한 곳이다.


수로를 완전히 빠져나간 후에 정지하고 수리하자는 이야기를 하며 혹시 속력을 떨어뜨려서 항진하는 게 그 고장 부위에 유리하다면 그리하라고 말해준다.


-그래도 됩니까?

기관장은 고마운 배려로 받아들이며 속력을 줄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도 한 시간 이상을 더 달리어 얕은 천소 등의 위험한 곳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와 10 마일 이상 거리를 벌려 놓고 난 후 엔진을 세우도록 하였다.


한 시간이 넘는 수리를 끝내고 다시 속항 했을 때, 내 방으로 찾아온 기관장은 현재 수리한 재료인 고압 파이프의 예비 품 재고가 없으며, 수리한 부품도 완전치 못해 또다시 터질 것 같아 우려가 된단다.


따라서 고장이 나서 빼어 놓은 것을 다시 용접 육성하고 잘 다듬어서, 예비품으로 가지고 있도록 조치했다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나는 그래도 우리나라에 입항할 때까지야 괜찮겠지 하는 기대를 품었기에, 내발 등에 떨어진 급한 일이 아니란, 걱정 없는 태도를 지닌 채 그 말을 들어준 것 같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어제 새벽보다 30분쯤 늦은 4시 반에 일어나 방에서의 일과를 끝내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갑판으로 나가서 속보로 옮겨 딛는 운동으로 또 하루를 맞이 한다.


어느새 한 시간여가 지나 날이 훤하게 새는데 마지막 마무리 한 바퀴를 남기고 거주구 쪽 갑판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일부러 윙 브리지로 나온 일항사가 양손을 입가에 둥글게 모두 워 입나팔을 만들어서 소리쳐 나를 부른다.


-선장님! 선장님!

-무슨 일이야?

-어제 수리한 자리가 또 새어서 수리해야 한다고 기관장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알았어. 기관 정지하고 작업을 하라고 해.


대답을 해주며, 브리지에서 일항사가 기관정지하는 절차를 받아주면 되니, 마무리의 한 바퀴를 마저 채우고 올라가 보기로 작정한다. 다시 선수 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번에 호주를 향해 내려오면서, 지난 항차는 한 차례도 배를 세우는 일이 없이 무사히 마쳤다며 기분 좋아하던 기관장이었다.

헌데 금 항차는 어제까지 벌써 이틀에 걸쳐 똑같은 일로 기관 정지하면서 벌써 몇 시간의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한 번만 해도 되었을 일이 고압 파이프라는 수리 재료가 본선에 남아 있지 않아, 당장 터진 부분을 다시 용접으로 땜질해서 써야 하는 임시방편이 반복되며 생긴 일이다.


그때마다 배를 세우게 되어, 속이 터져 버린 현임 기관장은 전임자들이 왜 그런 식으로 부속품 재고관리를 했는지 야속하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먼저의 사람들도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자신의 방법으로는 최선을 다한 배려였겠지만, 일단은 자신과 다르면 입에 오르내리게 되어있는 인간사라 그런 불평을 받게 되는 일면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서로를 비교하여 넘침과 모자람이 약간씩 차이가 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배 자체가 너무 나이가 들은 것이 가장 큰 이유 이리라.


기관 정지하고 한 시간이 되어 올 무렵 브리지의 전화벨이 울린다. 기다리던 전화라 얼른 수화기를 드니 기관장이다.


오늘은 어제와는 좀 다르게 용접도 실하게 보강을 하여,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라는 보고를 하며, 다시 엔진을 기동 시키겠다는 전언이다.


전화로만 그렇게 통화하고, 기관을 다시 살리어 두 시간 여가 더 지나고 난 후, 내 방으로 찾아온 기관장은 아침 수리 후 계속 기관실에 머무르며 체크하여, 고압 파이프가 터지는 근본 원인을 찾아내었단다.


그 원인이 되는 일을 찾아냈기에, 오늘 수리해 준 부분을 완전한 부품으로 교환해 주기만 하면 다시는 그런 고장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인다.


그 수리한 부분도 어제와는 다르게 이음새 부분을 V자로 파낸 후 용접 육성하고, 밖으로는 다른 파이프를 덧대어 이중으로 보강해준 방법을 채택해서 호주에서 짐을 싣고 광양으로 올라가는 항해에서 그 일로는 엔진을 세우는 일이 더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끝으로 고압 파이프의 예비 품을 필요한 양만큼 긴급으로 청구하여 이번 광양에 입항하면서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로 아침의 기관정지 수리 상황의 끝맺음을 했다.


순항하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좀은 무료함을 느끼어, 시간을 보낼 겸 거주 구내를 둘러보려고 아래층에 내려갔던 김에 사관 휴게실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기관장이 찾아왔다.

일부러 나를 찾아온 표정을 보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의문의 얼굴을 들어 보이니,


아침에 수리한 부분의 이웃에 있는 고압 파이프에서 또 살살 새어 나오는 기름기를 발견하고 예방 차원에서 다시 기관을 정지하고 수리를 해야겠단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수리를 하도록 양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꾸 늦어지는 후유증으로 인해, 우리에게 다가올 운항 스케줄의 일을 생각하니 좀은 답답한 심정이 든다.


내일 16시 헬리콥터로 도선사가 승선할 예정인데 여기서 더 늦어지면, 어두워진 시간에 승선하기 때문에 도선사 쪽도 고생스럽겠지만 우리 배도 어려운 일이 낮보다는 더 많아지니 그만큼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수리로 30분쯤 섰다가, 엔진을 가동하는데 선속을 빨리 올리지 않고 천천히 하는 것을 보며, 주위 다른 곳도 점검하는 모양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전화가 오더니 또 다른 파이프도 비슷한 말썽을 일으켰단다.


그걸 또 수리하는데 40분 정도 더 걸리겠다며 시동 걸어 살살 달리던 엔진을 다시 세운다. 그리고 기관부원은 모두 기관실에 내려오도록 선내 방송을 해달란다.


이제 1850시가 되어오는 이 시간, 다시 살려낸 기관으로 움직임을 재개하겠다는 요청이 기관실에서 부터 올라온다.


그동안 모두 네 번에 걸쳐 열 시간 정도를 고장으로 세웠건만, 기관장의 그 일에 대처하는 태도로 봐서 이제는 더 이상 고압 파이프로 인한 기관 멈춤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배도 그런 내 기분을 알아차렸음인지 열심히 잘 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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