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를 제자리에 수납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승선하고 있는 우리 배의 나이를 사람의 경우로 셈해 본다면, 환갑이 지난 정도의 나이, 즉 이미 노년기에 접어든 형편으로 비할 수 있겠다.
따라서 신조 때는 갖추고 있었던 여러 가지의 물품이 파손되거나 없어진 것이 많으며, 지금도 없어진 것들이 제 때에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로 방치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번 광양에서 포항까지 포철 직원들의 승선 실습을 위해 그들이 쓰게 된 방에 준비해 줬던 새 매트리스는 그 일을 위해 회사가 특별히 긴급 청구를 받아주어, 즉시 수급하여 준비했던 물건이었다.
손님들이 실습을 끝내고 모두 내리고 난 후, 그 방에 남아 있던 매트리스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가 점심시간 식탁에서 나왔다.
누군가 자신의 방에 있는 매트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있던 중, 새것을 보고 나니 탐이 나서 제 맘대로 가져간 것일까?
-그 방의 문을 잠가 두지 않았었나?
하고 묻는 내 말에
-잠가 두었었죠.
일항사는 잠가두는 것이 당연하였다는 말투로 대답한다.
-그런데 누가 열어서 가져갔지? 마스터 키를 가진 사람이 또 있는 건가?
마스터 키란 여러 방의 열쇠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한 개의 열쇠로 열 수 있게 만들어진 특수 열쇠인 셈인데 우리 배에는 각 부서별로 세 종류의 마스터 키가 있는데 갑판부 것은 일항사가 통제하며 통상 갑판 당직사관이 당직의 인계인수 시 같이 넘겨주는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우리 배 안에 설비된 모든 자물쇠를 열수 있는 한 개로 압축한 마스터 키도 있다. 통상 선장의 금고에 넣어져 관리되고 있기에, 그런 열쇠를 사용하여 매트리스를 가져갔을 리는 없는 것이기에 누군가 복사한 마스터 키라도 갖고 있나? 하는 의심을 잠깐 해본다.
-글세 그게 어찌 되어 그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스터 키의 관리자인 일항사가 당혹한 표정으로 뒷말을 흐린다.
틀림없이 가져갈 수 있는 틈을 노리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해치우기 전에는 그 큰 매트리스를 어떻게 남의 눈에 안 띄게 해서 가져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그 방이 잠기기 전에,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잽싸게 보고도 없이 가져간 것으로 상황을 굳히며, 모두의 방을 뒤져서라도 찾아내고 싶은 맘이 굴뚝 같이 드는 걸 꾹 참아내고 있다,
-갑판부 미팅 룸의 형광등도 떼어 갔는데요.
-패밀리 룸에 있는 냉장고도 없어졌는데요.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그런 류의 일들이 부지기수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건 PSC 임검에서도 지적 사항이 되는 일인데요.
이번에는 일기사가 또 다른 걱정거리의 한 가지가 된다는 투로 한 말씀을 거들고 나선다.
계속 듣고 있자니 괘씸한 마음이 치미는 이야기들이라, 그 정도에서 끝내도록 손사래를 쳐서 막는다.
다음 주 초에 시행 예정인 선내 위생검사를 행할 때, 빈방이나 선내 다른 곳에 있는 물건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개인의 방으로 허가 없이 옮기는 일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굳힌다.
결국 이것도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며, 회사에는 건의 사항으로, 본선 자체에선 수시로 교육을 하면서, 이루고 싶어 하는 <제자리 돌려주기 운동>의 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모든 사용한 물품(공구류 등)은 이용한 후에는 원래에 보관하고 있던 자리로 꼭 되돌려 놓아주자!
-제자리 돌려주기 운동의 기본 행동 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