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없는 불은 모두 끄고 어둠을 유지하며
일 년을 통틀어서 한 달 정도의 날씨만이 좋다는 이곳 헤이포인트의 기상 치고는 바로 그 좋다는 한 달에 들어가는 아주 끝내주게 좋은 날씨가 도착과 접안 중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부두에 접안하고는 걱정거리가 없어야 하는데 엔진의 수리를 밤을 새워했고 또 바로 수리한 것과 같은 결함의 진행 개소를 옆 부위에서 발견하고도, 더 이상의 작업할 만한 시간이 없고, 갈아 넣어 줄 마땅한 부속품도 없어 그냥 덮어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속게나 끓이다가 떠나가는 배가 되었다.
그 좋은 날씨를 믿음의 빌미로 하여, 급작스럽게 기상이 나쁘니 배를 부두로부터 떼라는 명령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기에, 항만당국에는 기관수리 작업을 하겠다는 신청도 하지 않았고,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기관수리를 한다는 것은 수리 중에는 기관을 사용할 수가 없는 DEADSHIP으로 된다는 뜻이니,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 발생 시에 배를 움직일 수가 없는 점 때문에 어느 나라나 항만당국은 정박 중의 기관수리 작업은 꼭 보고를 해서 허가를 받고 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러나 날씨가 좋아 급하게 피항하거나 움직일 비상의 일이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니 구태여 보고하고 기다리는 시간낭비를 빙자하여 그대로 작업할 생각을 했고, 아예 밤까지 새워가며 기관실에서의 작업을 강행했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나는 다른 선원들과 같이 한사코 상륙한다고 작정했다면, 못 나갈 바야 아니지만, 그래도 작업복과 심지어는 몸에 시꺼먼 기름까지 묻혀가며 수리 작업에 몰두한 부하 동료들을 놔두고 혼자 밖으로 놀러 나간다는 것이 체면도 안 서고 뭐 그래서 배를 지키며 MACKAY시로 나갈 수 있는 이곳에서 낙일 수도 있는 외출도 삼간 채 배를 지켰고, 어언 출항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가 배를 묶어 놓고 있던 2번 선석 바로 앞쪽인 1번 선석의 배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다른 배가 들어올 때까지 우리 배는 아직 마지막 트리밍(산적화물을 실을 때 마지막으로 화물을 평평하게 골고루 실어주는 일) 작업을 벌리고 있었다.
저녁 7시부터 배에 올라와서 선적작업의 마지막 서류를 챙기고 있던 대리 점원과 같이 두세 시간 동안 화주를 기다리고 있던 중 선적이 끝났다는 통보에 이어 화주가 승선한다.
계산된 선적화물의 양을 기입한 B/L(BILL OF LADINGS 선화 증권)에 서명을 하여 화주에게 교부해 주고 나니 이제 우리의 떠날 차례가 온 것이다.
두 척의 예인선이 1번 부두의 방금 접안 작업을 끝낸 배로부터 떨어져 나와 우리 배 옆으로 오고 도선사 역시 그 배로부터 하선하여 우리 배로 건너왔다.
도선사 승선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던 우리 배였기에 도선사는 승선하자마자 두 척의 예인선을 각각 앞뒤로 한 척씩 붙여 놓은 후 모든 계류삭(繫留索)을 안의 것부터 밖의 것의 순서로 걷어드리게 한다.
-선수, 선미 여기는 선교!
-예, 선수입니다.
-예. 선미입니다.
선수, 선미의 책임 사관으로부터 각각 응답이 왔다.
-터그 보트를 앞쪽에는 선수 왼쪽에, 선미는 브리지 옆에 잡는다.
나의 지시가 떨어진다.
-예, 선수입니다. 선수 왼쪽에 터그보트를 잡겠습니다.
-예, 선미입니다. 선미 브리지 옆에 터그보트를 잡겠습니다.
-선수, 선미. 모든 라인은 SPRING LINE부터 시작하여 BREAST LINE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수는 HEAD LINE 선미는 STERN LINE순으로 걷어들일 것이니, 터그보트 잡은 후 즉시 SPRING LINE 걷어 들일 준비를 할 것!
-선수 알았습니다.
-선미 알았습니다.
즉시 선수미 부서에서 응답이 오고 조금 후에 다시
-선수 PORT BOW에 터그 라인을 잡았습니다.
-선미 PORT STERN에 터그 라인 잡았습니다.
선수, 미로부터 보고가 들어오며 출항 준비 일 단계가 끝났음을 가름하게 한다.
- LET GO SPRING LINE!
명령이 브리지에서 트랜시버를 통해 다시 하달되니
- LET GO SPRING LINE,
선, 수미 부서에서는 각각 똑같은 말을 복창하고 나서 잠시 지나서는
-LET GO SPRING LINE SIR!
육상에서 계류삭을 풀어 주었다는 대답이 들어온다.
모든 내어준 라인이 순조롭게 격납되자, 다음으로 넘어간다.
-LET GO BREAST LINE!
-LET GO BREAST LINE,
-LET GO BREAST LINE SIR!
이제는 마지막 라인인 HEAD와 STERN LINE만이 남았다.
-LET GO ALL LINES!,
드디어 이 항구를 떠나게 되는 마지막 명령이 떨어진다.
-LET GO ALL LINES,
선수 선미에서 바쁜 ANSWER BACK이 들어오더니 잠시 후에
-ALL LINE LET GO SIR!(모든 줄이 걷어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여덟 시 20분이다.
드디어 이 항구와 맺어져 있던 모든 줄이 걷어지는 순간이며 공식적인 출항 시간이 바로 이 시간으로 확정되는 순간이다.
-ALL LINES CLEAR, SIR!
보고가 들어오니 이제는 기관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헤이포인트와 연결되어있던 모든 인연이 끊어지며, 새로운 보름간의 귀항 길 항해가 시작되는 시간이 되었다.
도선사는 떠나는 배에게 마지막 힘을 보태기 위해 예인선에게 부두로부터 배가 떨어지게 끌어당기라는 명령을 하달하며, 우리 더러는 엔진 사용하라는 통보를 준다.
-SLOW AHEAD!
도선사의 엔진 오더가 떨어지니 ,
-SLOW AHEAD!,
계속 텔레그라프 옆에 대기하고 있던 삼항사가 ANSWER BACK을 하며, TELEGRAPH를 따르릉 울려 SLOW AHEAD에 갖다 놓으니 기관실에서 역시 따르릉 벨을 울리어 같은 자리에 응답 침을 놓아주니, 크르렁 힘찬 소리를 내며 기관이 시동된다.
-SLOW AHEAD SIR!
3 항사가 엔진이 걸린 것을 확인하며 보고를 한다.
빵빵하게 석탄으로 온 선창이 채워진 배는 든든해진 몸매로 천천히 부두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HARD PORT!
배를 부두로부터 떨어뜨리어 내더니, 이제 우리가 가려는 외해를 향해 뱃머리를 왼쪽 최대로 돌리라는 조타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HARD PORT,
조타수가 알았다는 ANSWER BACK과 동시에 타를 왼쪽으로 최대 각도(보통 35도의 타각(舵角) 임)가 되도록 돌리고 난 후
-HARD PORT SIR!
명령대로 시행한 조치를 조타수가 응답할 때,
배는 이미 서서히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방금 떨어져 나온 바다 한가운데 밤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만들어진 HAYPOINT 부두가 슬금슬금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멀어져 가는데...
또 한 번의 조용한 수선스러움 가운데 항내 도선사가 하선하고, 드디어 갑판을 밝히던 모든 등불이 꺼지며 항해등만을 밝힌 배는 먼바다 항해를 위해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부두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까마득한 머리 위의 중천에서는 구름에 고인 보일락 말락 하고 있든 열 사흘 날 달의 얼굴이 항구의 불빛에 밀려 무색해하던 기색을 거두며 빛을 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