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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산이라더니

by 전희태


270410-포트헤드랜드 기관실 008.jpg ECR(Engine Control Room)의 주기관 컨트롤판넬의 모습

주기관을 자동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모든 계기가 이곳에 모여 있어 브리지로부터 내려오는 주기 사용에 대한 명령은 이곳에서 Answer back과 함께 모두 처리하게 된다.


게으름을 피웠는가? 늦게 일어난 아침 6시 30분이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선다.

건너다 보이는 기관장실의 방문 앞에 슬리퍼 한 켤레만이 동그마니 외롭게 놓인 게 보인다.

기관 수리로 밤샘을 하여서 방으로 못 돌아온 강행군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제 상황을 살피려고 엔진을 뜯어본다던 일의 결과가 저녁에는 괜찮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또 다른 일이 한밤중에 부가된 건 아닌가 하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짐작이 들면서 내 기분마저 찜찜해진다. 아침식사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기관실로 향한다.


ECR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침 기관부의 모든 사관과 부원들이 빙둘러 앉아 아침밥 대신 빵을 먹으며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밤을 새워 힘들게 일한 사람들의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긴 해도 표정들은 밝아 보인다.

-밤샘을 했는데도 아직 쌩쌩한 얼굴들이네!

하며 모두에게 아는 체를 한다.


그렇게 들어서는 내 쪽으로 눈을 돌리던 사람들은 모두 편하게 바닥에 앉아 있거나, 의자에 기대 있던 자세에서 주섬주섬 일어서며 나를 맞이 하려고 자세 바꿈을 한다.

-어이! 괜찮아~ 편하게 쉬면서 먹던 것이나 마저 들어요.

인사치레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그냥 앉은 채, 빵 먹던 일을 계속하라고 이야기해주며, 자리에서 일어선 기관장에게 얼굴을 돌린다.

-고장 원인을 찾아낸 모양이지?

-예, 지난번 수리해 놓은 씨린더 헤드를 써야 할 고장이었어요.

-아, 그 녀석으로 바꿔줘야 하는 일만 남아 있었던 셈이군.

나의 머릿속에는 지난 항차 육상의 수리업자가 배로 와서 파인 부분을 용접으로 메워주고 다시 매끈하게 갈아내어 깨끗하게 다듬어 줬던 씨린더 헤드란 물건이 떠 오른다.


처음 회사에 수리를 의뢰할 때에는 그 물건을 육상으로 들어내어 수리해야 하므로 그럴 경우 그 들어내는 일이 오히려 수리 자체보다도 돈이 더 들 수 있는 큰 문제라고 걱정했던 것이 상기된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해둔 일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아닌 바로 다음 항차인 이번에 당장 사용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그 준비는 대단히 유용한 일이었다는 생각에 한 시름 놓는다.


-이제, 얼마나 더 작업하면 끝이 나겠어?

-곧바로 다시 시작하면, 아홉 시쯤엔 끝나겠어요.

한 시간 남짓 더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럼, 모두들 수고 좀 더 해주고..., 나는 올라가겠어.

기관실을 떠나 위로 올라오는 마음은 그야말로 무사히 잘 되어 가는 모습에 흐뭇한 심정이었다.


그로부터 세 시간쯤 지나 방으로 찾아온 기관장은 또 똑같은 현상이 다른 기통에서도 살짝 발견되어 오늘 출항하지 않으면 그것마저 손을 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순간 답답한 마음이 들며, 온전하게 그걸 고쳐서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그대로 덮어두고 조심해서 운항하여 귀항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사실 시간이 수리를 허락한다 해도 어젯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에게, 다시금 하루 종일 작업시키기도 힘든 일이고, 현실적으로도 오늘 저녁 출항은 굳어져 있으니 다시 수리에 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을 박아 준다. 이제는 어차피 그대로 가야 하는 형편에 미리 그런 사항을 알게 됐으니 그에 준한 조심성을 가지고 운항하며 광양에 도착하여 수리가 될 수 있도록 미리 수리 신청이나 해두자는 걸로 이야기를 유도해 갔다.


-차라리 모르고 있으면 편하련만...

자조 섞인 이야기를 뱉어내는 기관장에게

-어차피 알게 됐으니, 미리 조심해서 항해하라는 걸로 알면 되지 뭐~, 안 그런가?

그를 위로도 할 겸 내 마음도 다독여 주면서, 다시 한번 작업은 이걸로 끝내자고 권해본다.


조금은 결벽증 비슷한 태도로 보이긴 하지만, 매사에 완벽을 기하려는 기관장의 품성은 바람직한 일 일지라도, 밑의 부하에게 힘든 일과를 지워주는 면도 만만찮은 큰일이다. 따지고 보면 기관장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주 유능한 기술인이다. 그런 걸 알면서도 이번 마지막 결정은 내 뜻대로 하기로 극구 권유를 한다.


기계를 직접 다루고 고치는 일은 하지 않지만, 30 년 넘게 듣고 보아 온 풍월에 기대더라도, 지금의 본선 주기관 상태에서 그 건은 더 손을 안 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은 것이다.


사람과 기계. 이 모든 상황의 경중을 가려가며 배 안에서의 최종 결정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입장에서 더 이상 기관부 사람들의 피로를 누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우위로 삼은 것이다. 너무 완벽을 기하려는 기관장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기관부원들이 갖게 되는 육체적 피곤함이 더욱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판단이 서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에 광양에 가면 하선할 예정을 가진 기관장이 이렇게 들쑤셔 놓은 것 같이 만들어 준, 기관에 관해 많이 낡았다는 관념, 그래서 우리 배는 ㄸ배라는 분위기마저 새삼스레 팽배해져 가는 느낌이, 내 기분을 섭섭하게 만들며 다가온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여 앞으로의 안전 운항에 진실한 보탬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 나타나 있는 결함들에 대해 적절한 육상의 수리 도움이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란, 항차 보고서를 입항 전까지는 꼭 작성해서 제출해야 될 모양이다. 그런 보고서라도 안 내면, 내 마음도 결코 편하질 못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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